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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성가정 축일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명하고 지냈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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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21-12-26 ㅣ No.151843

 

루카 2, 41-52(성가정 축일)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사람이 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거룩한 탄생은 하느님께서 “가정”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가정”을 만드시며(이루시며)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엮어지고 꾸며졌기 때문입니다. 곧 성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루시며 오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시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시고, 관계를 맺으시는 첫 장소로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당신의 오심으로 모든 것을 축복하고 새롭게 하시는 당신께서는 맨 먼저 “가정”을 축복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연상시킵니다. 곧 친교와 사랑과 통교를 이루는 일치의 공동체를 연상시켜줍니다. 그래서 성가정은 모든 가정뿐만 아니라 모든 수도공동체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가정이라고 해서, 고통이나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님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부유했거나, 혹은 근심 걱정이나 고통이 없는 가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히려 더 문제가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기를 낳자마자 쫓겨 다녀야했으며, 자신의 아기 때문에 많은 무죄한 아기들이 죽어야했고, 혼인 전에 아기를 낳은 까닭에 이웃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오늘 <복음>에서처럼 마리아는 이해할 수없는 아들과 함께 살아야 했고, 아들마저 세상을 먼저 떠나버린 불우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행복한 가정이 아니었을까요?


분명, 행복한 가정이었음에는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그 어떤 고통이나 어려움도 없어서 성가정이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가정’이란 단순히 고통이나 어려움이 없거나 말썽 부리는 사람이 없는 가정이라서가 아니라, 얼마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머물러 계실뿐만 아니라, 주인이 되어 계시는 가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가정’을 이루는 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머무실 수 있도록 하는 일이요, 그 말씀이 품은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일 것입니다. 곧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기에 ‘성가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구원의 길에 함께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가정”은 예수님과 함께 구원의 길을 가는 동반자요, 협조자요, 반려자로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곧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는 가정입니다.

 

<제1독서>에서, 가정이란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무대임을 깨우쳐줍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무대임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가정의 주인이 되시도록 모셔 들이는 일입니다. 곧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집회 3,6)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제2독서>에서는 신앙공동체 구성원의 신분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곧 하느님의 호의를 입은 자요, 하느님의 사랑을 입어 선택받은 자로 말합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삶으로 동정, 호의, 겸손, 온유, 인내, 용서, 사랑, 평화, 감사로 제시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서 풍부히 머무르게 하십시오.”(골로 3,16)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시며, “이것이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일”(콜로 3,20)이라고 하십니다.

<복음>은 바로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준재임을 말하면서도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명하고 지냈다.”(루카 2,51)고 전해줍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머무르게 하되, “말씀”이 주인으로 머무르게 할뿐만 아니라, 주인이신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입니다. 곧 “말씀”에 대한 순명과 섬김을 통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로 순명으로 섬기고, 섬김으로 순명하며 사랑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정공동체 안에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과 평화가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가정 축일”을 맞아,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를 구원의 길로 동행하시 위해 오신 “아기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어머니.

당신은 마음에 말씀을 품으신 도서관이셨습니다.

말씀을 펼쳐 읽으시며, 순명을 배우셨습니다.

가슴 속 품은 하느님의 뜻에서, 희망과 믿음을 길러 올리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품었던 그 주물의 틀에 저를 품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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