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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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목요일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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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12-29 ㅣ No.151899

1독서<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12-17

12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 덕분에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13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4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5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그리스도인과 세상

필자는 이 단락에서 자기 교회 교우들에게 먼저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고 나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훈계로 끝맺는다. 전반부에서는 교우들을어린 자녀들”,“아버지들”, “젊은이들이라고 번갈아 부르면서, 이미 죄를 용서받았고 예수와 하느님을 알았으며 악마를 이겼고 지금도 그러하다고 함으로써 구원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다.

 

12

요한 교회에서 자생한 이단자들은 죄 없다”,“죄를 짓지 않았다고 자만했다. 이에 맞서 요한 1서 필자는 작죄와 용서를 논하곤 한다.

12ㄴ절을 직역하면 죄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사해졌습니다”. 베드로가 고르넬리오 백부장에게 세례를 주는 기회에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 “그분은 믿는 사람은 모두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고 그분에 관해서 증언합니다”(사도 10.43).

 

13

처음부터 계시는 분은 하느님이기보다 예수라는 게 통설이다. 상론하면 선재하신 예수라는 설, 공생에 처음부터 끝까지 계시하신 역사적 예수라는 설, 요한계 교회에서 처음부터 신봉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설이 있다. 브라운과 보나르의 설은 별로 다를 바 없다. 역사적 예수 또는 요한계 교회가 처음부터 신봉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뿐 아니라 온몸으로 체득, 증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아버지들”, 곧 요한계 교회의 원로들은 각별히 이 점에 유의해 마땅하다.

그 악한 자는 귀신들의 괴수 악마를 뜻한다.

 

15

긍정적 세상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끔직히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게 요한계 교회의 그리스도론이었다. 이런 그리스도론을 빙자하여 이단자들은 세상과 세상 것들을 사랑했으리라.

부정적 세상관: 세상은 초월적 말씀을 알아보지 못했을뿐더러,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다음에도 그분을 배척한 까닭에 예수 역수 역시 세상과 그 지배자 악마를 단죄했다. 그러니 세상 또한 예수와 제자들을 미워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예수와 세상은 적대관계에 있는만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게 15-17절의 논지다. 세상은 거짓 예언자(반그리스도)가 설치는 곳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세상을 이겼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을 이겼다.

 

16

영의 선의와 반대되는 게 육의 욕정이요, 영적 심안의 선의와 다른 게 눈의 욕정이다. “재산의 자랑은 궁핍한 형제들을 돌보지 않고 거드름을 피우는 짓거리다.

 

 

 

 

 

 

복음<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6-40

그때에

36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36

예언자 시므온에 이어 예언녀 한나가 나오는데 루카는 종종 남녀를 차례로 등장시키곤 한다.(8,1-3; 13,18-21; 15.3-10; 사도 1.13-14).

 

37

1세기에는 교회에서 공인한 과부단이 있었는데 루카는 한나의 삶을 그 과부들의 귀감으로 제시한 것 같다.

과부 된 지 여든네 해일 수도 있고 처녀생활, 결혼생활, 과부생활을 다 합쳐 여든네 해일 수도 있다.

 

38

직역하면 예루살렘의 속량을”, 속량에 관해서는 1.68 참조. “예루살렘의 속량이스라엘의 위로”(25)와 같이 메시아의 구원을 뜻한다.

 

40

요한의 성장 실태와 병행하여 예수님의 성장 실태를 서술한다(40.52).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독서 15절에서 저도 긍정적 세상관을 갖고 살았는데 주해를 하다보니 부정적 세상관이 여기에 있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간에 성경을 대충읽었나 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외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는데 어찌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우리들 죄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신 분으로서 죽음을 맞이하실 때도 제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하소서!”라고 아버지께 순종하셨는데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는데 어찌 예수님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당신이 지으신 모든 것을 얼마나 사랑을 하셨으면 아드님을 죽게하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속죄하셨겠습니까? 지금도 저는 긍정적 세상관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오늘 독서와 반대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목마르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더 사랑을 하여야하는데 그래서 더 많은이들을 구원하여야하는데...’라는 목마름이라고도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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