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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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 혹시라도 나는 존재 자체로 누군가를 죄짓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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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5-23 ㅣ No.172657

 

평소 사랑과 자비, 용서와 인내를 목청껏 외쳐왔던 예수님께서 오늘은 왠지 말씀에 날이 서 있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 발언의 강도나 수위가 꽤 높습니다. 어떤 말씀은 너무나 섬뜩해서 듣기조차 거북스럽기까지 합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연자매란 돌로 만든 방아입니다. 크고 둥근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얹는 것이지요. 이것을 소나 말이 끌어 돌려서 곡식을 찧고 빻습니다. 따라서 연자매 사이즈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즉시 사망이었습니다.

강경한 예수님 말씀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참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마냥 오냐 오냐 하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칭찬과 격려도 아끼지 않습니다. 온 마음과 몸을 다 바쳐 자녀를 위해 헌신합니다.

그러나 때로 자녀가 그릇된 길을 갈 때, 그 길이 정말 가지 말아야 할 길이라 할 때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길에서 되돌리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타일러보기도 하고, 눈물로 호소도 하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면 준엄하게 꾸짖기도 하고 강하게 외쳐보기도 하고 정신 번쩍 들게 혼도 낼 것입니다.

이런 극진한 자녀 사랑을 배경으로 예수님께서는 손을 잘라버려라, 발을 잘라 버려라, 눈을 빼 던져버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유다 문화 안에서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버리는 사형 방법이 없었지만, 로마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사형을 집행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형과 함께 로마로부터 도입된 끔찍한 사형 방법 중에 하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이러한 사형 방법을 끔찍이도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수장 후 시신을 되찾을 수 없어서였습니다.

차라리 연자매를 선택하라고 강조할 만큼 예수님께서는 이웃에게 죄를 짓게 하는 죄를 중히 여기셨습니다. 일시적인 쾌락으로 지옥을 얻기보다는 불구가 됨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게 더 낫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죄를 짓게 되면 다른 무엇에 앞서 가장 가치 있고 고귀한 영혼의 구원, 하느님 나라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그토록 강조점을 두신 것입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있는 힘을 다해서 투쟁하라는 권고 말씀인 동시에 죄 앞에서 목숨 걸고 맞서 싸우라는 격려 말씀이 연자매 관련 경고 말씀입니다.

오늘 저는 죄와 관련해서 이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혹시라도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죄짓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미처 인지하지 못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악표양으로 인해, 우리를 보고 있는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를 죄짓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멀리 보지 않아도 그런 인물 중의 대표주자를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얼굴이 매일 여기 저기 수시로 등장하는데, 그분 얼굴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옵니다. 그분은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죄를 짓게 만드는 원흉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같은 사제 수도자들은 그럴 가능성이 참 많은 인생입니다. 많은 시선들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호시탐탐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매사에 모든 언행에 신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교우들은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교우들이 극심한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제일 먼저 우리 얼굴을 떠올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낸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반대로 우리 얼굴만 봐도 갑자기 뒷골이 당기고 혈압이 급상승한다면, 그보다 더 비참하고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가운데 누군가를 죄짓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살펴보고 성찰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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