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5일 (수)
(녹)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자유게시판

I think so. 6

스크랩 인쇄

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4-09-18 ㅣ No.232202

프란치스코도 성 프란치스코가 되기 이전에는 나환자들과 같은 사람들을 보면 기겁을 하며 혐오했다고 한다

나환자의 생김새와 모습에 그런 혐오감과 거부감을 갖는 것은 보통의 인간성이 보이는 반응들이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에 호감을 보이고 일그러지고 추해 보이는 것에 비호감을 보이는 것은 인지상정과도 같은 그런 보통의 인간성이다
프란치스코 또한 그런 반응을 보인 이유가 어디 다른 데에 있는 게 아니었다
프란치스코가 그런 인간이라는 게 바로 그 이유인 것이다
혐오감과 거부감은 적대감에 종속된 일련의 감정들이다
그런 감정들은 인간성에 뿌리깊게 자리해 결국 그 대상들을 적대시하게 되어 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에 호의와 호감을 한하는 것도 인간감정의 방향성이자 상호성이자 반응성이다
나는 프란치스코로부터 시작된 관련 수도회 산하 시설에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지내게 되었다
한 두세 달 가량이었는데, 이 짧은 시간 동안 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먼저는 프란치스코회와 같이 카톨릭 수도회에 대헤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카톨릭 교회는 아브라함이나 요셉, 모세, 다윗과 같은 사람들, 신앙의 성조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가졌던 신앙과는 좀 더 질적으로, 차원적으로 깊고도, 높고도, 넓은 신앙을 지닌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이 된 신을 따르는 이들로서 자신들의 삶의 신원과 정체를 그 예수 그리스도에 두고 그 말씀과 삶을 따라 살며 그 본보기를 바라보며 그 신앙의 완성자처럼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어 살려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그 삶을 사는 하느님의 교회인 것이다
개신교는 그런 실체보다는 인간들로서 하느님의 이름 속에 살려는 이들이 모여 신앙생활을 하는 인간들의 공동체를 기반한 종교에 가까운 것이다
카톨릭 수도회는 카톨릭의 성직자들처럼 그 수도회 회원들이 복음이라는 진리가 지향하는 모든 이의 모든 것으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공동생활 공동체인 것이다
그런 모든 이의 모든 것은 그저 열린 마음이나 개방성만을 지니고 그 대상들에 대한 그런 입장과 관점만을 가지고 살라는 표지가 아니다
성 프란치스코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모든 인간들, 그 모든 이들 역시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잘 아는 것을 말한다
그들 모두에게 있는 차이들이나 다양성을 넘어서 인간이라는 같은 이름을 지닌 존재들로서 그들의 실체적 신원이나 정체가 자신과 다르지 않은 이웃임을 잘 아는 것이다
그러면 성 프란치스코처럼 삶은 보다 깊이 복음화되는 것이다
나는 나에 대한 막연한 기대 심리를 가졌던 이들에게 여러 모로 많은 판단과 시비를 받게 되었다
나의 부족함들은 그런 그들의 도마 위에서 최상의 재료가 되어 그런 그들이 만든 그 어떤 메뉴같은 것으로 낙인찍히는 그 과정을 그 짧은 시간 동안 거치게 된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다른 이들에 의해 낙인찍히는 과정은 역사 속에서도 숱하게 있어 왔던 일들이다
내가 어둠의 긴 터널 속에서 서 대표에게 보냈던 그림편지들이 그 막연한 환상을 불러 일으켰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역시나 이 또한 나의 잘못인 듯 싶다
그 그림편지의 내용에 서 대표도 한 두 번 감동을 받거나 감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그림편지들을 보여주며 서 대표가 일일이 당부하고 이해시키려 했을 일들이 눈에 선해 보인다
그러나 서 대표 또한 그림편지들로만 나라는 사람과 교류했기에 나의 진실한 인간됨됨이를 알기에는 어려웠을 일일 것이다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지 않는가
그렇게 미리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사람들과의 두어달 가량의 기간은 그 기대를 여지없이 부셔주는, 박살내는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그 시설에서 대부분 잘 어울려 지내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이상하고도 이질적인 캐릭터를 맞딱드리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먼저 밝혀두어야 할 몇 가지가 있는데 그런 그들의 판단과 시비는 사람에 대한 통찰과 이해가 많이 결여된 그리고 정교한 메스와 정밀한 의술도 없는 다분히 막무가내로 벌이는 협잡에 보다 더 가까웠고 짐승들처럼, 이리떼처럼 사람을 몰아가는 지경에 더욱 몰입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해, 한 사람을 두고서 말이다
오로지 말이다
사람이 자신이 최소한 지켜야 할 입장을 저버리게 되면 자신의 삶을 위해 제대로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게 된다
그것은 세상속에서도, 현실속애서도 마찬가지이다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지켜야 할 입장은 무엇일까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자신들의 골수와도, 뼈대와도 같은 입장, 곧 예수 그리스도가 지녔던 입장인 모든 이의 모든 것으로서의 입장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편들고 지지하는 것에도, 어떤 것들에 대한 판단과 비판도 치우침이 없어야 하고 편파적이지 않아야 하며 자신들의 의식과 감정 상태에 따라 죄우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하느님도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예언도 하신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본질과 성격, 그 입장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결국 그 시설에 머무는 수도자들에게조차도 못난 인간과 아닌 인간으로 낙인찍히는 그 짧은 시간은 이후 천주교에 속한 많은 이들과의 지난한 시간을 지배하는 다소 부조리한 현상과 상황의 근간이 되었다
이런 인간은 우리가 거두고 살자는 분위기도 나름 있었고 결혼과 정착에 대한 내 삶의 전망도 보여주는 듯 했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은 실사영화로도 찍히지 않은 그들만의 생각으로 그치고 그들의 그런 선의가 행동으로, 실천으로, 도움으로 이어지지 못한 그 모든 탓은 결국 나에게 돌릴 수 밖에 없는, 나에게 돌아오는 내 못난 성격과 행실과 양태에 대한 부메랑 그 이상의 일도 아니게 된 것으로 판가름나고 판결?나게 되었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대하고 다루려는 부조리한 모든 시도가 그런 곳에서도 변함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층 가일층 더욱 그런 부조리는 가속화되었고 더욱 커져만 갔다
안타까웠고 가슴아픈 시간들이었다
나에겐 신앙이 거의 없었고 사랑이 거의 없었다
그런 근본문제는 인간들의 의지와 손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거의 죽음에 가까이 이른 사람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을 다시 살리려면 하느님 성격의, 하느님 편의 사랑과 자비가 있어야 할 일이었고 그만큼이 되는 인간편의 사랑과 도움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대체로 삶의 중심이 없는 사람들이 가지는 의욕이란 무언가를 계속 해보려고 하는 것인데 사람이 하는 일과 세상 일 전반이 그런 분야나 직종에서 명함 한 장 정도 내밀 정도가 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다해야 하는 기본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의 인내와 끈기도 필요할 일들이다
나는 그 시설에서 두어 달 가량 나의 그런 부질없고 쓸데없는 의욕에 사로잡혀 이리 갔다 저리 갔다도 한 것이다
그 시설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한 번 다시 들어가기를 또 한 번, 그리고 영영 나와 버린 것이다
그곳의 수도자들은 대체로 내가 그곳에서 머물고 정착하기를 바랬고 그런 도움을 주고자 애를 쓰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이, 전과자이며 많이도 부족한 사람이 어디에서 그렇게 자신의 삶을 잘 살 수가 있을까에 대한 그들 나름의 이해와 공감들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림편지와는 영 딴판인 나라는 사람의 실체를 그들도 겪으며 그들은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기에 말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86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