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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신부님_사랑의 찬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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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애인(敬天愛人)”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제 때에 열매를 맺으리라.”(시편1,2-3)
교황님의 제46차 해외 사목 방문중 루벵 학생들에게 한 감동적인 강론 일부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를 추구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없이는 공부는 권력의 도구가, 다른 이들을 통제하는 방법이 된다. 그것은 더 이상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는 것이 된다. 앞으로 나가라. 이념들의 이분법에 들어가지 마라.”
엊그제 수도원 ‘자캐오의 집’, 피정집에서 단체 피정지도중 제의방에서 불암산을 바라볼 때 저절로 흘러나온 고백에 행복했습니다. 흡사 주님 앞에 서있는 듯 행복한 체험이었습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2024.9.28.>
당분간 10월은 이 시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역시 지인에게 시화(詩畫)를 부탁해서 받았습니다. 수도원에서 가장 불암산 바라보기에 전망좋은 ‘자캐의 집’ 3층에서 탄생된 시입니다. 아마도 성인들 역시 주님 앞에서 늘 사랑의 찬미에 행복해 했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역시 지혜문학에 속하는 욥기의 시작입니다. 욥기 역시 앞서의 코헬렛 못지 않게 깊고 아름답습니다. 욥의 시련에 앞서 똑같은 그에 대한 묘사가 2회 나옵니다.
‘그 사람은 흠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이였다.’
하느님도 인정한 욥이었고 시련에 앞서 사탄 앞에서 욥을 자랑했고, 사탄은 이의를 제기하자 하느님은 사탄의 제의를 수락합니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 보았느냐? 그와같이 흠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위에 다시 없다.” “좋다. 그의 모든 소유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
새삼 우리 생명은 하느님의 고유 권한에 속해 있음을, 인명은 재천임을 깨닫습니다. 1차 사탄과의 게임은 극한의 고난과 시련중에도 솟아난 욥의 다음 감동스런 찬미의 고백으로 하느님의 승리로 끝납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평소 사랑의 찬미로 일관된 삶임을 입증하는 고백입니다. 더불어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임종어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은 모든 일에서 찬미받으소서.”
오늘 9월 순교자 성월 마지막날 9월30일 우리는 참으로 자랑스런 성인 예로니모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역시 순교적 삶에 한결같았던 성인으로 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티노,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과 더불어 서방의 사대교부에 속하는 분입니다. 당대 성인의 학문의 깊이는 성 아우구스티노 외엔 아무도 필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합니다.
성인의 가장 큰 업적은 불가타(일상적, 대중적이라는 뜻) 성서 번역이요 391년부터 406년까지 16년에 걸쳐 이루어졌다하니 성인의 진리를 향한 사랑의 열정과 끈기가 참으로 경탄스럽습니다. 성인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교회에 대한 사랑, 성경에 대한 사랑은 한결같이 뜨거웠습니다. 성인의 편지에 나오는 권고가 심금을 울립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늘 성경을 읽으십시오. 아니 당신 손에서 성경이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지혜가 그대를 사랑할 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성경이 그대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 성경을 흠모하십시오. 그러면 성경이 그대를 감싸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대의 혀는 그리스도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것들이 아니라면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신학교의 수호성인’, ‘수덕생활의 수호성인’으로 불리는 성인은 사제이면서도 생애 대부분을 수도자로 살다가 420년 오늘 9월30일, 72세에 베들레헴의 수도원에서 임종을 맞이합니다.
욥의 경천애인의 사랑은 그대로 예수님께 전수되었음을 봅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닮은 오늘 기념하는 성 예로니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두 번째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후 제자들에게 유언같은 교훈 둘을 선물하십니다. 동상이몽,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에도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문제로 논쟁중인 철부지 제자들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어린이가 상징하는바 가장 취약하고 약하고 무력한 이들입니다. 이들을 사랑의 환대로 맞이함이 예수님 당신을 환대하는 것이며 궁극에는 예수님을 보내신 분, 하느님 아버지를 환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가운데 가장 약하고 무력하고 불쌍해 보이는 이들이 가장 큰 사람이라는 것이며 우리의 전적인 사고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얼마전 공동체 회의 결과에 ‘신의 한수’라 감탄했고 민심은 천심임을 확인하고 기뻤습니다. 엄격한 비밀투표를 통해 이심전심 가장 약해 보이나 실상은 똑똑한 수도형제를 총회대표로 선출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주님의 가르침도 소중합니다. 스승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그가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막았다는 기고만장한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바로 오늘 루카복음과 같은 내용의 어제 마르코 복음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주님을, 진리를 독점할 수 없음을 배웁니다. 진리앞에 일체의 기득권이나 엘리트주의는 모두 배격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진리의 주님을 그들만의 소유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진리앞에 지극히 겸허해야 함을 배웁니다. 그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진리이신 주님을 찾는 사랑과 찬미의 겸손한 이들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시는 진리이신 주님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작은 이들’을 사랑하며, 진리의 사람, 찬미의 사람, 겸손의 사람, 경천애인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주 하느님, 당신 말씀을 찾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나이다.”(예레15,1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