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 (금)
(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자유게시판

진리의 문턱에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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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식 [goodactor] 쪽지 캡슐

2024-12-06 ㅣ No.232450

사람인 우리 모두는 대체로 그 인간성에서 비슷한 성향들을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이 부정하다거나 때론 그 행태나 몰골에 이르기까지 더럽다고 여기면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선한 것도 없을 거라는 단정을 내리거나 그 의로움이나 선의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는데, 그 극에 이르러서는 그 사람에 대한 정의마저도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이나 일에 대해 극도의 배타적인 몰이해를 가하고 철저히 배척하고 적대시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형오나 경멸을 넘어서는 일종의 세레머니와도 가깝다
분명히 그런 모든 반응들과 대응?들의 근거가 있을 법한데, 그게 그들 모두의 양심이라든가, 선량함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는 손에 돌을 들어 쳐라'
아주 유명한 안티테제인데 이 말을 들은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 결론이다
살다 보면 인간적인 경험들을 함께 사는 사람들과 하게 되는데, 당연히 그 사람들의 행실과 모습들이 언제나 두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가족같이 삶의 많은 시간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함께 하면 사소한 버릇까지도 알게 되고 그 사람의 인증까지도 가능한, 그 사람이 할 법한 말이나 행위까지도 증언이 가능할 정도까지 된다
여기서 무엇보다 함께 한 경험이, 오랜 시간 봐 왔던 그 사람의 행실과 모습을 종합해 내어 어떤 단일한, 혹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양태를 아우르는 뚜렷한 성격이나 됨됨이로 여기는 확신을, 부정하거나 불신할 수 없는 그 확증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같은 사람에 대해 얼마만큼 신뢰해 줄 수 있을까
작은 실수나 허물도 쉽게 덮어 주지 못하는 사람들의 성격을 보았을 때, 결정적 실수나 허물은 그 사람에 대한 전적인 부정과 불신에 이르게 하는 단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 존재가 할 법한 행위나 일
어린이들은 하느님을 아주 순진하게 믿는다
그래서 이 세상의 나쁜 모습들에 대해 하느님을 쉽사리 연관짓지 못한다
어린이들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을 하느님이 창조했다라고 가르치고, 그런 하느님은 선하고 좋으신 분이다라고 가르치면 어린이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그래야 하며, 곧이 곧대로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때묻지 않은 양심은 모든 것을 그렇게 단일성의 범주에서 이해한다
선과 악이 어떻게 하느님의 단일한 뜻에 포괄될 수 있을까
하느님의 단일한 본질과 성격에 어떻게 전혀 다른, 아니 한 쪽은 아예 어울릴 법도 않는데, '함께', '같이', '있을까?', 공존이 허용될 수 있을까, 넓게라도 포괄되면 안될 것 같은데 그렇게 가깝게도 곁에 둘이 있는걸까
그 난해한 철학적 물음들에 어린이들은 백지상태의 눈망울만 초롱초롱 굴릴 것이다
어린이들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 큰 사랑, 목숨까지도 바쳐 모든 이를 구원해 주려는 그 희생과 봉헌에 대해 이해하지는 못해도 어린이들이 이해가능한 인간성의 좋은 부분들이 예수님께는 있고 어린이들이 이해가능한 그 사랑, 인격적인 사랑에 대해서도 눈높이에 맞게 일러주면 그런 줄 안다
이린이들이 그런 줄 안다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그래야 하며 곧이 곧대로 그래야 된다는 말이다
아마도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피조물들이 하느님의 선함에 대한 지극한 아니면 일정 정도의 불신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예수님은 그 불신을 실제적으로 떨어뜨린 존재가, 신이 아닐까, 사람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이긴 신, 그러나 그 삶의 사실에는 십자가의 죽음과 고통이 있다
그렇게 십자가를 지고 간 사람이 세상을 이긴 신이다
예수를 믿는 이들은 그래서 그 신앙 속에서 사랑하고 희망하며 종교 본의의 생활과 자신들의 구원을 위한 봉헌과 봉사만을 다해도 누가 뭐라 그럴 사람들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본래의 본질과 성격은 예수처럼 하느님의 선함을 증언하고 증거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너희의 아버지를 찬미하게 하여라
예수가 실제로 살았던 삶과 행적이며 가르침의 전적인 지향이며 의미였다
하느님의 선함을 증언하고 증거하는 일이 곧 하느님의 일을 있는 그대로 다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선함에 대한, 같은 말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그 무엇보다 깊이 신뢰할 수 있게, 이 세상의 모든 악화와 부정과 불행 속에서도 그 진실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고 사람들을 살게 하는 삶의 빛과 소금이 하느님의 선함으로부터 있고,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선함에 기초해 그 전체가 이루어진다는 진실까지도 삶의 현실과 사실들 속에서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말로 하느님이 선하시니 하느님을 닮은 성인들이 되라는 것이다
그게 쉬울까
그 어려운 일이 잘 안 되기에 세상은 언제나 그런 것이다
나만을 행복하게 해 주는 신이라면 그 신의 가르침은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입 밖으로 낼 필요도 없다
그러나 모든 이를 그 가르침의 범주에 두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신이 모든 이도 자신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최고선에서 엇나간 위선에 젖거나 공동선을 도외시하는 지나친 이기주의에는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어두움들은 의로움에 비추어 좌시될 수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모험을 권고한 분은 하느님이다
나그네가 자리를 잡고 누워 버리면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서 나그네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면 누가 나그네인 줄 알겠나 혹은 그게 나그네인 줄로 아는 경우로 빠지게 된다
부당함과 불신, 이 둘을 본인들의 삶으로 증명하지는 마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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