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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간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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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서 비상계엄이 관련된 심문이 있었습니다. 명령을 받았던 군인들은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총을 쏴서라도 문을 열고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는 경찰청장, 특전사 사령관, 방첩사 사령관의 일치된 증언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런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군인들은 자신들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점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대통령은 포고령의 내용도 몰랐다고 합니다. 단순히 겁주기 위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결의가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탄핵과 권한 대행 체제로 정부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있었고,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위도 있습니다. 법원에 난입해서 집기를 부수고, 경찰을 폭행하고, 판사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공정과 정의, 법과 원칙을 떠나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부끄러움은 동물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서 생존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는 ‘숨’을 넣어 주셨고 그 숨은 인간의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옳지 않은 일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즉 불의를 거부하는 양심을 뜻합니다. 이는 유교에서 인간의 본성 중 하나로 간주하지만, 사실 성경과 신앙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죄를 범한 후, 벌거벗었음을 깨닫고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죄를 지을 때 본능적으로 느끼는 수치심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이 수치심은 단순히 부끄러움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여는 초대장이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숨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찾으시며, 죄 안에서도 사랑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느님께 진심으로 회개하며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그의 회개는 수오지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가 다시 하느님께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수오지심은 죄를 깨닫고 회개로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 예수님의 시선을 마주하고 밖에 나가 통곡했습니다. 그의 눈물은 수오지심에서 나온 것이었고, 이는 그가 진정한 제자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많은 경우 수오지심을 잃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6장 15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혐오스러운 짓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얼굴을 붉히지도 않는다.” 우리는 종종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거나, 죄를 합리화하려는 태도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수오지심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환경 파괴, 사회적 불의, 그리고 인간의 탐욕은 모두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들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는 회칙 "찬미 받으소서"에서 인간이 환경을 파괴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회개하고 창조 세계를 돌보아야 한다고 강력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이러한 세상 속에서 도덕적 나침반을 잃지 않고 수오지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수오지심은 단순한 도덕적 감정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수오지심은 십자가의 신비 안에서 구체화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수치를 대신 짊어지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성찬례에서도 우리는 수오지심을 고백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라는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느끼는 겸손한 수오지심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며 용서와 회복을 청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희망으로 바꿔 주십니다. 수오지심은 회개와 변화로 이어질 때 진정한 의미를 갖습니다.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양심 성찰을 통해 하느님께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불의와 잘못된 구조를 부끄러워하며, 하느님의 정의를 이루는 데 앞장서면 좋겠습니다. 수오지심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며, 성화로 나아가는 초대입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은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통로가 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겸손과 순결을 본받아, 우리의 수오지심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살아갑시다.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