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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 너무 멀리 내다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오늘 하루만 잘 견디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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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정기 희년,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제 마음에 꼭 담고 있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순례 여정 내내 음미하고 또 음미하는 중입니다.
“여행객은 요구와 집착, 불평불만투성이지만, 순례자의 길은 언제나 감사와 감동, 찬미의 연속입니다.”
저도 돌아보니 참 요구도 많았고, 불평불만도 많았습니다. 마치 오늘 첫 번째 독서인 민수기에서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민수 21,5)
그런데 죽을 만큼 아파도 보고, 깊은 바닥 체험도 해보며, 그렇게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던 어느 순간, 작은 깨달음 하나가 왔습니다.
“그래, 나는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 존재가 아니로구나. 나는 그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아침 이슬이요, 한 줄기 연기 같은 존재로구나. 떠나는 것도 원통해 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아니로구나. 주신 분이 거두어가시겠다는데.”
그 뒤로 삶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바쳤던 청원 기도는 더 이상 드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많이 베풀어주셨는데, 더 이상 뭘 바라나, 하는 마음에 감사와 찬미 기도가 제 기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로운 이 정기 희년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노력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도한 요구와 집착과 불평불만의 삶에서 감사와 찬미의 삶에로 전환하는 노력입니다.
정기 희년을 맞아 특강 초대받아 가는 곳마다 희망의 대명사이신 베트남의 반 투안 추기경님 이야기를 자주 해드립니다. 이분은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되자마자, 즉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게 됩니다. 삼촌이 남베트남의 고위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절차도 재판도 없이 즉시 체포·구금되었고, 억울하게 13년간 억울하게 감금 생활을 하셨고, 그중에 9년간 독방생활로 큰 고생을 하셨습니다. 죽을 고생을 하시던 반 투안 추기경님께서도 어느 순간 깨달으셨습니다.
“나는 한때 잘 나가던 사제였고, 촉망받던 대주교였지만, 지금은 독방에 갇힌 수인일 뿐입니다. 자리라는 것, 명예라는 것,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결국 나라는 존재도 이 땅 위에 영원히 머물 존재가 아니라 한 작고 나약한 순례자일뿐입니다.”
그 깨달음 이후 반 투안 추기경님의 삶은 암흑과 불안, 지루함과 불평불만의 삶에서 감사와 찬미의 삶으로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분이 옥중에서 바친 감사기도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나에게는 거저 받은 선물이 많습니다. 반짝이는 아침 이슬, 햇빛, 한낮의 열기, 맑은 샘물, 시원한 바람, 새들의 지저귐, 따뜻한 우정의 손길, 친근한 교회 종소리.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언제나 가득합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일 원 한 푼 내지 않고 누리고 있습니다. 눈을 바로 뜨고 정신을 차리면 끊임없이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은총의 기억이 나를 뒤덮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지금 극심한 고통 중에 계신 분들, 하루하루 너무 괴로운 분들, 반 투안 추기경님의 조언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멀리 내다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 저것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저 오늘 하루만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극심한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는 이 순간에도 반드시 주님께서 나와 함께 동행하시고, 성모님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진리만 믿고 이 하루만 잘 견딘다고 다짐해보시기 바랍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