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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 어떤 성향의 교황님이 선출될 건지에 대한 세상의 관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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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언론에서 한 번씩 흘리는 소식이 있습니다. 차기 교황님이 보수적인 성향과 진보적인 성향 어떤 교황님이 선출되실지 궁금해 합니다. 저는 장례 기간 전에 언론을 통해 이런 기사가 나온다는 것 자체에 대해 언론을 향해 조금 불쾌했습니다. 이건 인간적으로도 선종하신 교황님에 대해 종교를 떠나 예의에 어긋난 처사입니다. 조만간 콘클라베가 시작돼 새로운 교황님이 선출될 것입니다. 어떤 교황님이 선출될지는 조금만 기다려보면 될 일입니다. 이건 시간이 답해주게 됩니다. 결과 여부에 관계없이 평신도 입장에서 가톨릭의 미래를 봐서 어떤 교황님이 지금 시점에서 탄생해야 도움이 될지 지나간 천주교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고민해봤습니다.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진보와 개혁의 성향을 가진 교황님이 나오시지 않으면 앞으로 천주교의 운명은 불투명합니다.
향후 30년 정도는 천주교의 운명은 진보와 개혁이 주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이후에는 다시 보수 성향의 교황님이 선출되시면 될 겁니다. 이건 종교지만 인간 역사의 진보와 보수 역사 메카니즘을 보면 세계적인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과 궤를 같이 합니다. 학교 다닐 때 토인비에 대한 책을 리포트 때문에 우연히 관심을 가지고 많이 탐독한 적이 있었습니다. 토인비가 종교적인 관점으로 본 역사 비평이라는 게 있는데 이걸 바탕으로 해서 지금의 현실을 제가 진단해보겠습니다. 철저히 역사학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현실을 조명해보겠습니다. 개신교는 가톨릭이 부패해서 반기를 들고 저항해 새로운 노선을 견지하며 창설된 종교입니다. 처음엔 분명 좋은 명분으로 부패한 조직에 반기를 들어 개혁하려고 나갔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개신교는 오히려 그들이 반기를 들었던 그 부패보다는 더 심한 부패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회계처럼 결산을 해보면 더 발전하고 했어야 했는데 어느 부분이냐 하면 그들이 맨처음 부패했다고 하는 부분만 봤을 때입니다. 이건 양심 있는 개신교 신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양심 있는 사람들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그들이 주장해도 맞긴 맞는데 동조를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기득권이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그들은 가톨릭에 반기를 든 부분에 대해 오랜 세월 그 문제점을 쇄신하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를 토인비의 역사학 비평에서 인간 역사 테두리 안에서 보면 역사가 발전하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보와 보수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처음엔 개신교가 진보 성향의 칼로 가톨릭의 부조리한 면을 개혁한다는 명분을 세우고 혁신을 기하려고 했는데 이런 조직도 그 조직이 계속 유지된다면 그 조직도 또 보이지 않는 부패 세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이 세상 어떤 조직도 그 조직이 계속 유지되면 부패되기 쉽다는 걸 증명하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잘 알 수가 없지만 실제 지난 가톨릭의 역사를 보면 종교개혁 그 시점 부근을 제외한 그 앞전 역사를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역사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역사를 일반인이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런 역사를 알고 지난 최근 100년 정도의 근현대 종교 역사를 보게 되면 우리 가톨릭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내부적으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역사를 봐도 동서양 불문 오래 유지되면 불미스런 일이 생기게 돼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사회학자들이 그 이유를 잘 진단합니다. 역사학자들은 항상 결과를 보고 역사를 해석하기 때문에 진행되는 과정을 분석하는 눈은 사회학자들이 월등합니다.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님 이전의 교황님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분기점으로 해서 이끌고 나가시는 큰 모토 지향점을 보면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건 워낙 보수적인 관점을 유지하려고 하는 측면에서 봤을 때 그런 것입니다. 종교도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의 문화나 사람들의 사고와 문화를 재반영하고 재해석해야 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덜 민감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근본 이념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상황이 조금 변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신학자는 다릅니다. 신학자는 그런 변화를 세상의 조류에 맞게 또 다시 새로운 개념으로 잘 해석해 시대에 맞는 개념을 도출해내는 게 그들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가톨릭 내에서도 혁신적인 성향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 교회는 노골적으로 반대는 하지 않는데 침묵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침묵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인정은 하지만 그 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 그 주장이 잘못 됐다고 공론화할 텐데 그런 명분을 내세울 만한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국 관련 종교 기사 중 가톨릭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면 종종 이런 기사를 보게 됩니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이건 하느님의 역사를 떠나 인간이라는 조직이 구성하고 있는 사회 조직 안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건 불교, 가톨릭, 개신교 할것없이 어떤 종교도 다 가지는 공통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답은 자신도 그 불합리한 점을 알고 그 불합리한 점을 개혁하게 된다면 자신도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알지만 그런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냐 하면 알아줄 것도 아니고 설령 알아준다고 해서 그런 모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침묵은 앞에서의 침묵과 같은 침묵이 아닙니다. 바로 불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극적인 방조에 해당한 것입니다. 이런 걸 방조라는 죄명에 제가 비유했듯이 이런 방조범이 될 위험을 우리 가톨릭에서만이라도 발생되지 않으려면 진보 성향의 교황님이 탄생하셔서 그런 고질적인 부분을 타파하지 않으면 지금 유럽과 같은 원래 가톨릭의 유산과 같은 나라가 실제 겉모습은 체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깡통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된 걸 보면서 우리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지 교회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텐데 실제 보면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어찌 되겠지" 하는 그런 생각만 하는 것 같습니다.
2000년 간 이어져내려온 조직이기 때문어 어떻게 해서든지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진보성향의 교황님이 나오시든 보수성향의 교황님이 나오시든 그건 하느님의 뜻에 달려 있을 겁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만 지켜보고 그 뜻을 잘 받들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비록 아무런 존재감은 없는 사람이지만 가톨릭이 발전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