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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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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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06-16 ㅣ No.182875

 

오늘 첫 번째 독서인 코린토 후서, 바오로 사도의 권고 말씀을 묵상해봤습니다. 제 마음을 흔들고 일깨우는 짧은 문장이나 단어들을 쭉 나열하며 음미해보니 하나하나가 참으로 은혜로웠습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 날, 많이 견디어 냄,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수고와 밤샘과 단식,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한 구절, 한 구절 묵상하다 보니, 복음 선포를 위한 바오로 사도의 행복했지만,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던 혹독했던 신앙 여정이 손이 잡힐 듯 다가왔습니다.

끝도 없는 전도 여행, 거듭된 추방과 투옥, 돌팔매질과 매질, 그로 인한 트라우마로 온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한 상태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희망의 말을 건네며 격려하십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면 희망이 없어도 꾸준히 희망했던 바오로 사도의 여정이었습니다. 돈보스코의 청소년 구원 사업의 여행길과 흡사합니다.

돈보스코 전기를 꼼꼼하게 다 읽고 난 후 저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백색 순교자’, ‘십자가의 인간’

돈보스코가 한 평생 지고 갔던 십자가는 참으로 다양했고, 그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두 살 때 아버지와 사별하는 큰 십자가를 짊어졌습니다. 그로 인한 극도의 가난, 성소 여정의 난관들...

뿐만 아닙니다. 사제가 되고 난 후 그가 의욕적으로 펼쳐나가기 시작한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사업은 큰 걸림돌을 만나게 됩니다. 시 당국자들뿐만 아니라 교육부 장관, 심지어 주교님과 동료 사제들조차 돈보스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돈보스코는 수백 명의 가난한 청소년들이 기숙했던 오라토리오 내일 아침 아이들이 먹을 빵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사도 바오로 처럼 달릴 곳을 다 달린 노인 돈보스코는 만년에 이르러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드디어 하느님께서 제게 맡겨주신 과업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가요?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던가요? 그 길을 다시 걸어야 한다면 솔직히 제가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보스코가 항상 쉴새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강철체력이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알고 보니 돈보스코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사제 시절부터 주기적으로 각혈했습니다. 서품 2년 차부터 눈병을 앓기 시작해서 결국 나중에 오른쪽 눈이 실명되었습니다. 서품 5년 차부터 심한 다리 부종으로 인해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심한 두통과 치통에 시달렸고,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으면 불면증, 만성 소화불량, 가슴 통증을 앓았습니다. 종창과 포진으로 고생했으며, 생애 마지막 15년간 주기적인 발열로 힘겨워했습니다. 한 프랑스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돈보스코의 몸은 ‘수선 불가능한 코트’와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보스코는 불평 한 마디 없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처럼 열심히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하루 서너 시간씩 빠짐없이 고백성사를 집전했으며, 수시로 장거리 사목 방문을 다녔습니다. 매일 밤늦도록 교회와 수도회를 위한 집필 작업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자신의 병세에 대해 의사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인간 돈보스코가 후배 살레시안들에게 남긴 말씀입니다. “아무리 큰 십자가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절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좋으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십니다.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2025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_ 조명연 신부님

  

어느 여행 수필 작가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항상 화낼 준비가 된 사람들 같아요.”

 

화는 언제 생기게 될까요? 무시당할 때,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오해나 소통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등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입시, 취업, 승진, 결혼, 육아 등에서 경쟁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그 안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됩니다. 아마 이런 이유로 화낼 준비가 된 사람 같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자기 감정을 억누르는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화병’이 있습니다. 화병은 화를 많이 내는 병이 아니라, 적절히 표현되어야 할 울화와 억울함 등이 내재하여 있는 병입니다. 문제는 이 화병이 터지면 큰 일인 것입니다.

 

그냥 참는 것이 아닙니다. 또 자기가 당한 것을 언젠가는 다시 되갚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마음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가 가득한 세상 안에서, 일상 속 깊숙이 스며있는 이 화를 주님 뜻에 맞게 마음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힘든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주님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구약성경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는’이라는 부분은 피해자와 동일한 정도의 피해를 가해자에게 가하는 복수법인 탈리오 법칙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넘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라는 것은 모욕에 대해서도 사랑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오른손으로 왼쪽 뺨을 치는 행위는 유다인 사회에서 수치심을 주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겉옷까지 내주어라.’라는 말은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 권리조차 사랑으로 기꺼이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라는 말에도 재미있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법으로는 로마 병사가 유다인에게 강제로 천 걸음까지 짐을 들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천 걸음까지는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강제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동행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 마음을 사랑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 기준을 따르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지만, 하느님의 뜻은 세상을 넘어선 사랑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 권리를 내려놓고 누군가를 사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 사랑을 베풀기 힘든 대상이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못할 이유를 찾기보다 사랑할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할 때 주님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이미 난 길을 따라가지 말고, 길이 없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 흔적을 남겨라(랄프 월도 에머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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