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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언제나 항상 ‘선’은 악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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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38-42).”
1)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동태복수법’은 원래는 정의를 실현하라는 율법이었고, ‘죄에 상응하는 처벌만’ 하라는 율법이었습니다. <복수를 해도 된다는 율법이 아니라, ‘과잉 처벌’을 하면 안 된다는 율법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을 때려 목숨을 잃게 한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또 짐승을 때려 목숨을 잃게 한 자는 그것을 보상해야 한다. 목숨은 목숨으로 갚는다. 동족에게 상해를 입힌 사람은 자기가 한 대로 되받아야 한다. 골절은 골절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다.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대로 자신도 상해를 입어야 한다. 짐승을 때려죽인 자는 그것을 보상해야 한다. 사람을 때려죽인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너희에게는 법이 하나일 뿐이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레위 24,17-22).” ‘사적인 복수’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을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도피 성읍’ 제도입니다. “살인자가 피신하여 살 수 있는 경우는 이러하다. 전에 미워한 일이 없는 이웃을 실수로 죽인 자나, 자기 이웃과 함께 나무를 베러 숲으로 가서, 나무를 찍으려고 손에 도끼를 잡고 휘두르다가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져나가 이웃을 치는 바람에 그 이웃을 죽게 한 자는, 그 성읍들 가운데 한 곳으로 피신하면 살 수 있다. 살인자가 전에 그 이웃을 미워한 일이 없으므로 사형 판결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피의 보복자가 흥분한 나머지 그 살인자를 뒤쫓아 가서, 그 성읍에 이르는 길이 먼 탓에 그를 따라잡아 때려죽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성읍 셋을 따로 떼어 놓아야 한다.’ 하고 명령한 것이다(신명 19,4-7).” 이렇게 분명하게, 하느님께서는 사적인 복수를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동태복수법의 본래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사적인 복수를 해도 된다는 율법으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라는 예수님 말씀은, 하느님의 율법을 본래의 정신대로 회복시키신 말씀입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라는 말씀은,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를 “악에 맞서지 마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악’에 맞서야 하고 ‘악’을 물리쳐서 제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같은 악’이 아니라, ‘선’과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2)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로이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7-21).” 바오로 사도가 설명한 것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은 “선으로 악을 굴복시켜라.”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에게 굴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항상 ‘선’과 ‘사랑’은 ‘악’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는, 신명기 32장 35절에 있는 말씀이고,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는, 잠언 25장 21절-22절입니다. 구약성경이 사적인 복수를 허용한 것으로, 또 구약시대를 사적인 복수를 허용했던 시대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실제 인간 세상의 현실을 보면, 또 인류 역사를 보면, ‘악의 힘’이 ‘선의 힘’보다 강한 것으로 보일 때가 많고, 선한 사람들이 억울한 고통을 겪는 일이 실제로 많이 일어나고, 나쁜 악인들은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을 볼 때가 많습니다. 그런 현실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비현실적인 가르침으로, 또는 탁상공론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비의 실천’과 함께 ‘정의의 실현’도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에 ‘자비’만 있고 ‘정의’가 없다면, 그 자비는 악을 조장하는 일이 될 뿐입니다. 반대로 ‘정의’는 있는데 ‘자비’가 없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악’이 될 것입니다. ‘무자비한 정의’를 ‘정의’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정의의 실현’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공동체가 연대해야 합니다. <교회는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도피 성읍’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