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8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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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심리를 공부하신 수녀님과 나눈 소중한 영적 자산 나눔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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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5-07-07 ㅣ No.183299

 

조금 전에 어렵게 부탁드려서 한 수녀님을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오전 9시에 만나 세 시간 가량 찻집에서 대화를 나눈 후에 식사하고 헤어졌습니다. 사실 외국에 계셨고 메일로만 최근까지 연락을 주고 받았습니다. 실제 한국에 입국하신 건 한 달 전이었습니다. 오늘 만난 분은 제가 여러 차례 언급해드렸던 수녀님이신데 입국해 부산에 계신 어떤 수녀님을 만나셔야 되는데 이왕 왔으니 마산이 부산과 가까운 거리라 저에게 소식을 주셨던 것입니다. 한 번 꼭 만나 뵙고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제가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까지 수녀님을 만나게 되면 어떤 걸 여쭤봐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 세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 세 시간을 위해 소중한 영적 자산을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메모를 하며 질문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준비를 치밀하게 해서 그랬는지 일단 질문 7개를 다 소화했습니다. 수녀님도 사전에 제가 어떤 질문을 할지는 구체제인 상황은 추측할 수 없었지만 그간 주고받은 메일에서 대충 어느 정도 제 성향을 파악하셨는지 오늘 제가 드린 질문에 특별히 준비를 하시지 않아도 나름 어느 정도는 답변을 해 주실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한 가지 질문만은 50프로 답변만 해 주셨고 로마에 가셔서 다른 연구원들과 좀 더 함께 고민을 해보신 후에 나중에 메일로 답변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수녀님께서도 사실 시간이 촉박하신데 저를 만나보고 싶었던 이유가 실제 어떤 느낌의 형제인지도 사실 무척 궁금하기도 했고 또 무엇보다도 사실 제가 그동안 수녀님께 드린 영성심리에 관한 질문 때문에 수녀님께서도 학문적으로 이론적으로만 생각했던 문제를 현실에서 어떻게 이걸 적용해야 할지를 고민해본 게 수녀님께도 실제 영적으로 유익했다고 저에게 일부분은 감사한 부분도 있다고 하셔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질문은 7개였지만 그 내용 자체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곤란하겠습니다. 수녀님께서도 제가 굿뉴스에 글을 올리는 걸 아시기 때문에 사전에 약간 주의를 주셨습니다. 오늘 만나서 형제님이 나눈 이야기를 혹여 굿뉴스에 오픈하더라도 너무 생생하게는 전달하지 말고 약간 포괄적으로 전해줬으면 한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분명히 수녀님께서 제가 수녀님과 만난 후에 이런 내용을 분명히 올릴 거라고 확신을 하시더군요. 이와 관련해서 수녀님께서 저의 심리적인 성향을 이미 어느 정도는 다 파악하고 계셨던 것 같아 한편으로는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느낀 게 있습니다. 일반 심리학만 공부하신 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꼈고 또 한 가지는 확실히 학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셔서 그런지 설명 자체가 마치 수학 공식처럼 논리 전개가 분명해서 이해를 명확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몇 차례 나누어서 수녀님과 나눈 이야기에 대한 답변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제일 먼저 신앙생활하면서 인간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단순히 몇 시간 잠시 이야기해서 나올 수 있는 답변은 아니지만 제가 오늘 드린 질문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구체적으로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 질문드렸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최대한 간결하게 선명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수녀님께서 이 질문에 먼저 어떤 전제를 하나 하시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신앙은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사람이라고 하면 보통 성직자, 수도자, 일반 평신도든 모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마치 교과서적인 답변입니다. 마치 우수한 성적으로 수석한 사람이 인터뷰 때 교과서 위주로 철저히 공부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식상한 프레임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신앙은 하느님과 나와 일대일 관계'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실제 맞는 부분도 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고 또 이 말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반은 맞다고 했을 때 그 반에 대한 부분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어느 경우에나 맞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이런 생각은 자신의 존재를 하느님과 묶어서 어떤 외부적인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게 하려는 하나의 자기 방어와 보호막으로 작용하게 하기 위한 심리적인 방어기제로서 역할을 할 때는 맞는 말이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만약 이런 의식으로만 갖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자신은 모르지만 자신의 영혼에 마치 좀벌레가 뭔가를 갉아먹는 것처럼 영혼이 피폐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느냐면 그런 사람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일단 그런 의식이 지배하게 되면 인간 본연 속에 있는 본능이 먼저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좀 더 쉽게 이런 예로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쉽고 명백한 사례라고 하셨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함께 고립이 된 것입니다

 

이건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똑같은 상황은 아닙니다. 고립이 됐는데 생존할 수 있는 선택권이 하나만 있는 경우입니다. 이 말은 둘 다 살 수 있는 게 아니고 한 명만 살 수 있는 경우라는 것입니다. 이때 만약 두 사람이 다 신앙인이라는 전제를 했을 때, 만약 평소에 신앙은 하느님과 나와 일대일이라는 의식이 지배적인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모습을 취할지 이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는 이성적인 사고를 배제하고서도 신앙인이라는 정체성도 실제 발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생각해야 되는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두 사람 모두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일 경우에는 별로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는 인간은 먼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고 싶은 본능이 있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선택을 한다고 해도 비난을 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 예에서 믿는 사람이라는 신앙의 기준에서 한번 보겠습니다

 

무신앙인은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말입니다. 원래 정상적인 신앙인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신앙인이라면 일단 위기에서 같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게 기본적인 자세라는 것입니다. 결과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인데 서두에 언급한 사람처럼 신앙은 나와 하느님과 일대일인 신앙이 중요하다고 하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람은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는 마음이 나올 확률이 거의 없다고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근데 평소 신앙은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일차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주변과의 관계도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앙인은 그런 상황에서도 실제 자기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인식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먼저 자기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전자의 경우처럼 일단 자기 생명이 먼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큼 자기의 생명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명확한 답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이런 장구한 설명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질문에서처럼 오히려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흔들지지 않으려고 그런 일대일에 중점을 두지만 넓은 시각에서 보면 신앙과 믿음의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보면 오히려 그게 신앙을 가지고는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신앙을 가진 사람보다도 더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는 사람도 세상에 있기 때문에 이런 기준에서 이 사안을 바라본다면 과연 하느님께서는 만약 구원과는 별론으로 하고 과연 어떤 사람에게 더 좋은 평가를 하시겠는가를 한번 생각해보면 이 질문 전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단 수녀님께서 제시하신 모범 답안입니다

 

답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비신앙인의 삶을 더 훌륭하게 평가를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만약 하게 된다면 엄청난 성경 지식과 신학을 설명해야 되기 때문에 그건 생략하지만 아주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면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라고 했을 때 신앙인은 단순히 하느님을 믿는다는 그 외형만큼 그 모습에 부응하지 않으면 단순히 세례만 받았다고 해서 신앙인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평가를 한다면 그게 과연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라는 역질문으로 답을 주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올려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신앙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긴 글 읽으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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