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 주간 화요일 “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마태 9,35)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은 가만히 머물러 계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루 다니시며 치유와 기적을 행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 당시에도 종교 지도자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찾으시는 '일꾼'은 단순히 종교적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는 데만 몰두했고, 상처 받은 이들을 외면하고, 체면과 율법만을 앞세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도 진짜 일꾼, 상처 입은 존재를 다시 살리고, 억눌린 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일꾼을 찾으십니다. 존재의 현장을 찾아가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존재가 상처받고, 외면당하며, 숨죽이고 살아가는 그 자리로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병이란, 단순히 육체의 아픔을 넘어 그 사람의 존재 전체가 왜곡되고 상처 입은 상태를 보여줍니다. 말못하는 이, 중풍병자, 나병환자, 눈먼 이들... 이 모두는 사회로부터 분리되고,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표현하거나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말못하는 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들은 말못하고 억눌린 마음을 방구석에 틀어 앉아 PC 게임으로 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방구석에서 나오지 않는 청소년,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현장에 찾아가, 이들의 존재를 원래 자리로, 원래의 관계로, 원래의 자기됨으로 돌려놓을 일꾼이 필요합니다. 오늘 내 주변이 '말 못하는 이', 상처 입은 존재를 발견하고 있습니까? 그저 안부를 묻는 작은 관심, 말 걸어주는 용기, 그것이 하늘 나라를 여는 시작일 수 있습니다. 치유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 나는 '왜 예수님은 그렇게 치유를 많이 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좋은 일'을 하러 다닌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즉 온전한 존재의 회복, 평화, 관계의 회복을 이 땅에서 실현하느라 여기저기 두루 다니셨던 것입니다. 병이 나았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온전히 회복되었다는 것이고, 소외된 이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이며, 침묵당한 이가 다시 말을 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 나라의 징표이기에, 예수님은 멈추지 않고 계속 치유하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우리 곁에서, 우리를 통해 치유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일꾼을 청하라고 간곡히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존재가 존중받고, 상처가 고백되고, 관계가 회복되는 그 순간,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진짜 일꾼은 상처 입은 존재를 다시 일으키는 사람 존재영성의 눈으로 보면, 참된 일꾼은 단순히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상처 입은 존재를 다시 살아나게 하고, 말을 잃은 이들이 다시 말하게 하고, 지친 이들이 제 존재의 빛을 회복하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그런 일꾼을 주님은 오늘도 부르십니다. 먼저, 내가 그 치유를 받아야, 비로소 다른 이를 살릴 수 있기에 오늘 나의 상처를 마주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먼저 내 존재를 일으켜 세워봅니다. 주님, 저를 먼저 치유해 주소서. 주님 앞에 서면, 나도 어느새 말을 잃고, 존재가 위축된 채 살아온 날들이 떠오릅니다. 나도 '말 못하던 사람'처럼, 진짜 나를 드러내지 못하고, 세상의 눈치와 두려움에 침묵하며 살아온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셨던 것처럼 내 안의 닫힌 존재, 상처 입은 부분, 억눌린 자아를 주님 앞에 드리고 싶습니다. 나도 치유받아, 다시 말하고, 다시 살아 숨 쉬며, 다른 이의 존재를 일으키는 일꾼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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