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8일 (화)
(녹)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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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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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0:37 ㅣ No.183305

교구청에 있을 때입니다. 1년에 한 번씩 전 직원 야외 행사가 있었습니다. 한 해는 부서별 야외 행사를 하고, 다음 해에는 전체가 모여서 야외 행사를 했습니다. 부서별 모임으로는 민속촌도 갔었고, 하늘 공원도 갔었습니다. 전 직원 모임으로는 산행도 있었고, 체육대회도 있었습니다. 기억나는 체육대회의 경기가 있습니다. ‘이인삼각경기입니다. 두 사람의 발을 하나씩 묶고서 반환점을 돌아오는 경기입니다. 이인삼각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둘이 호흡을 맞추는 것입니다. 혼자서 빨리 가려고 하면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호흡은 잘하는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운동 신경이 부족한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비슷한 경기로 서로의 이마로 풍선을 맞대고 반환점을 돌아오는 경기도 있습니다. 호흡이 맞지 않으면 풍선이 떨어지기도 하고, 풍선이 터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또한 호흡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저도 직원과 수녀님과 함께 이인삼각 경기에 참여했습니다. 직원도, 수녀님도 운동 신경이 부족한 제게 호흡을 맞추어서 무사히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신앙도 어쩌면 하느님과 나와의 이인삼각 경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인간에게 맞추어서 구원이라는 목적지를 향해서 걷고 계십니다. 아담이 교만으로 하느님의 뜻을 어겼을 때도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내치지 않으시고 함께 걸으셨습니다. 카인이 질투로 하느님의 뜻을 어겼을 때도 하느님께서는 카인을 보호하시면서 함께 걸으셨습니다. 다윗이 욕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어겼을 때도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용서하시면서 함께 걸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으로 유배 갔을 때 그 원인을 성찰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시거나, 버리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인삼각 경기의 규정을 어기고, 하느님의 뜻을 어겼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시련과 고통을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뉘우치고, 다시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보다 잘 달릴 수 있는 분이지만, 부족한 나의 걸음에 속도를 맞추어 주시며 함께 걸어주십니다. 어느 육상 경기에서 감동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1등으로 달리던 선수가 결승점을 얼마 남기지 않고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바짝 쫓던 2등 선수가 망설임 없이 멈춰 섰습니다. 넘어진 선수를 일으켜 세우고, 함께 손을 잡고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경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사랑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저는 하느님의 사랑을 떠올렸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걷다가 넘어질 때, 하느님은 결승점만을 바라보며 혼자 달리시는 분이 아니라, 넘어진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손을 잡고 함께 결승선을 통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넘어질 때 혼자 일어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넘어진 자리에서 함께 무릎 꿇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미신 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를 겪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떠났고, 그 대가로 고난을 겪었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고통은 버림이 아니라, 다시 호흡을 맞추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요셉의 형제들은 과거의 죄를 기억합니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요셉은 형제들의 회개를 듣고 물러나서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그 눈물은 단지 슬픔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용서의 징표요, 하느님의 마음을 닮은 자의 눈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예수님은 먼 데보다 가까운 곳부터, 이방보다 내 가족부터, 남보다 내 이웃부터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을 먼저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신앙은 어쩌면 이인삼각 경기를 닮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맞추어 주십니다. 우리의 상처, 우리의 무지, 우리의 느림에도 불구하고, 발을 묶은 채 함께 걸어주십니다. 문제는 내가 하느님께 그 발을 묶는 것을 허락하는가입니다. 내가 하느님과 발을 묶고, 호흡을 맞추고, 그 길을 함께 걸을 용기를 내는가입니다.

 

신앙의 반환점은 멀지 않습니다. 나의 작은 회개가 그 시작입니다. 나의 작은 용서가 그 첫걸음입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과 호흡을 맞추며 걷는 신앙의 이인삼각 경기를 힘차게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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