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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간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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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예전에 조선 왕 이름 외우셨던 기억 있으신지요? “태정태세 문단세~” 하면서 외우던 왕의 이름들. 순서가 중요했습니다. 학교 다닐 땐 성적으로 등수가 매겨지고, 회사에 들어가면 실적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도, 옆 사람도 그런 잣대로 바라보게 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 혹은 “나는 왜 저만큼 못할까…” 그러다 보면 괜히 속이 상하고, 분하고, 질투가 생기기도 합니다. 나라 사이에도 순위가 있습니다. G7,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같은 말도 다 순위를 매긴 결과입니다. 세상은 늘 크기와 숫자, 능력과 실적으로 줄을 세우려고 합니다. 제국주의 시대와 전체주의 시대에는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인류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었습니다. 크고 강한 나라가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더 크게 이바지하기로 했습니다. 문화와 예술로 국가 간의 장벽을 무너트리기도 했습니다. 통신과 교통이 발전하면서 이제 협력과 상생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국지적인 분쟁과 전쟁이 있지만 인류는 공동선을 위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습니다. 교회도 신앙도 크기와 규모로 순위를 정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서울 대교구에서 미주 지역에 파견한 성당이 있는데 그중에 보좌 신부님이 있고, 교우가 많은 성당이 4곳 있습니다. 신부님들은 그 성당들을 ‘Big 4’라고 부릅니다. 워싱턴 DC 성 김대건 안드레아,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타코마 성 정하상 바오로, 필라델피아 홀리 엔젤 성당입니다. 교구 사제 모임을 할 때도 4개 성당이 돌아가면서 준비합니다. 모임의 분담금도 4개 성당이 많이 부담합니다. 그만큼 재정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은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 있지만, 전에는 브루클린 한인 성당에 있었습니다. 미사 참례 인원과 재정은 달라스 성당보다 적지만 공동체는 가족처럼 기쁘게 지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신앙의 기쁨은 공동체의 규모와 크기로 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 말씀이 살아있고, 친교와 헌신이 있고, 나눔과 기도가 있다면 복음의 기쁨이 살아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그런 우리에게 방향을 다시 알려줍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친구라 불릴 만큼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홍해를 가르고, 시나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 그는 자신이 들어가지 못하는 약속의 땅을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양보합니다. 자신의 자리를 고집하지 않고, 조용히 한걸음 물러섭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었고, 참으로 겸손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말씀을 들으면, 왠지 마음에 찔리지 않으십니까? 어린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매사에 순수하게 받아들이며, 쉽게 웃고 쉽게 용서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순수하고, 겸손하며,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마음 말입니다. 요즘, 원망과 미움이 생기는지요? 아니면 분노와 질투가 생기는지요? 그렇다면 내가 세상을 내 욕심과 세상의 잣대로 바라보기 때문은 아닐까요? 지금 내 마음에 감사와 찬미가 가득하다면 우리는 이미 신앙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내 앞에 놓인 십자가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여겨진다면 나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