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0일 (수)
(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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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8-15 ㅣ No.184165

제 삶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이름입니다. 저는 저의 이름을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저의 이름을 정해 주었습니다. 이름의 뜻은 균형을 이루고 살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하나 역시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앙입니다. 저는 저의 신앙을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세례명은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선택하지 못했지만, 저는 저의 이름과 신앙이 좋습니다. 신앙에서 제가 선택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사제가 되고자 신학교에 입학한 것입니다. 부모님도 응원해 주셨고, 신학교는 제 삶의 못자리가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선택한 이후에 혼인 성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논문 주제입니다. 저는 설교학을 선택했고 저의 논문은 제 사제 생활에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선택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어떤 선택은 아주 가볍고 일상적이지만, 어떤 선택은 우리의 인생 방향을 결정짓는 중대한 선택입니다. 정치, 직업, 결혼, 진로, 이주와 같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늘 마음속으로 저울질을 합니다. 이런 저울질을 속어로 밀당(밀고 당기기)”이라고도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밀당은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때로는 거리두기를 통해 관계를 성숙하게 만들기도 하고, 너무 빠르지 않게 조율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기도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 사이에 그런 중재를 잘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수송아지로 우상을 만들 때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려고 하였을 때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려다가 광야에서 모두 벌하신다면 다른 신들이 하느님을 우습게 여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이야기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와 메추라기는 질린다고 불평했을 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불 뱀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셨습니다. 그때도 모세는 하느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어 높이 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하느님과도 밀고 당기시겠습니까?” 이 질문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던졌던 질문입니다. “너희가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이방 신을 섬길 것인지 지금 선택하라.” 여호수아는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 사이에서 중재하는 밀당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성에게 자신의 신앙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모세를 통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밀당을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진노하셔서 백성을 벌하시려 할 때, 모세는 백성을 감싸며 하느님께 간청했습니다. 때로는 하느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면서도, 또 때로는 백성의 불평을 하느님께 전달했습니다. 이런 모세의 중재 덕분에 이스라엘은 멸망을 면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다릅니다. 그는 더 이상 백성의 책임을 대신 지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이 말은 지도자로서 백성 앞에 내놓은 고백이자 선언이며, 신앙의 결단입니다.

 

진정한 선택은 자유로부터 비롯됩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철저한 내면의 순수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순수합니다. 계산하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 않고, 주는 대로 받고, 마음을 열고, 쉽게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자주 계산합니다. 신앙 안에서도 우리는 계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네가 가진 것을 다 팔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돌아섰습니다. 가진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계산했습니다. 잃는 것이 더 크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계산의 영역이 아니라, 헌신의 영역입니다. 믿음은 이득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조건 없이 따르기를 바라십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구리 뱀을 바라보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때때로 죄와 불신앙의 뱀에게 물려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구리 뱀처럼 높이 들린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선택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여호수아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 고백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주며, 이미 우리 안에서 하늘나라의 삶을 시작하게 합니다. 신앙은 밀당이 아닙니다. 신앙은 결단이요, 순수한 선택입니다. 그 선택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하늘나라의 기쁨을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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