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0일 (토)
(녹)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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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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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9-12 ㅣ No.184794

안마의자가 문제가 있어서 서비스 기사가 방문했습니다. 제가 할 때는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아서 기사가 방문했습니다. 기사가 리모컨을 켜니 작동했습니다. 순간 난감했습니다. 기사에게 껐다가 다시 켜보면 어떤지 물었습니다. 기사가 다시 켜니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리모컨이 잘되기를 바랐는데 리모컨은 저의 바람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기사분이 제가 옆에 있으니 신부님은 일 보세요. 제가 알아서 고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제가 옆에 있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저도 그럼 제 일을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어머니는 기사분이 냉장고를 고치러 오거나, 세탁기를 고치러 왔을 때면 커피도 주고,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것이 고마움의 표시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어머니처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옆에 없어도 기사분은 안마의자를 잘 고쳐주었습니다.

 

이화에 월백하고라는 시조가 생각났습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난 다정(多情)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때로는 지나친 친절이 부담될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글도 생각납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고치의 시간을 거쳐야 합니다. 조금씩 고치가 벌어지면서 한 마리의 나비가 됩니다. 그런데 친절을 베푼다고 고치를 벌려주면 나비가 나오긴 하지만 날개가 제대로 펴지지 않는 나비, 그래서 날지 못하는 나비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자매님이 연락했습니다. 32년 전에 제가 용산 성당에 있을 때 봉사하던 교우분입니다. 딸이 달라스에서 살고 있는데 남편이 세례 받기를 원했습니다. 관면혼배 주기를 원했습니다. 관면혼배는 줄 수 있지만 세례는 교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교리 받으면 내년 부활절에 세례받을 수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교회는 성인을 금구(金口)’라고 부릅니다. 탁월한 설교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절망 중에 있는 이들에게는 희망을 주었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빛을 주었고, 슬품 중에 있는 이들에게는 위로를 주었습니다. 두려움 중에 있는 이들에게는 용기를 주었고, 죄인에게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교만한 이들은 겸손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강론 잘하는 신부님을 금구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했습니다. 사제에게 강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준비된 강론은 교우들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고, 일주일을 지낼 수 있는 활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문을 썼고, 34년 동안 강론하지만, 강론은 여전히 어렵고, 힘든 숙제와 같습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설교학5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학생들에게 강론 준비에 필요한 것이 네 가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시대의 징표입니다. 시대의 징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책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가르침도 알아야 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뉴스의 맥락을 알아야 합니다. 다리가 아픈 사람에게는 다리에 필요한 약을 주어야지 머리에 필요한 약을 주어서는 안 되듯이 사제는 시대의 징표를 잘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잘 파악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말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의 중요성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라는 표현이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대한 비유로 사용됩니다. 이 구절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바오로 사도의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전달되는데, 그 말씀의 능력이 강력하고 예리하여 사람의 내면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제는 말씀을 통하여 시대의 징표를 해석해야 합니다.

 

셋째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표징을 드러낼 수 없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하기를 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들었습니다.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는 바람에 넘어질 수 있듯이, 샘이 깊지 않은 우물은 가뭄에 마를 수 있듯이 말씀과 함께 하지 않는 강론은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머물 수 있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과 멀어지게 했듯이 말씀과 함께 하지 않는 본인도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으면서 교우들을 하느님과 멀어지게 했던 바리사이의 강론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는 실천입니다.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의 참여 속에 성장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천하지 않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의 위선을 나무라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강론을 실천하지 않는 사제는 참된 예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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