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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신앙인에게 십자가는 끌어안고 가야 할 은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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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루카 9,43ㄴ-45).”
1)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과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들과 설교들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어떤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일’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표현 그대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놀라워하는데”는, 사람들이 놀라기만 하고 믿음을 갖지 않은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믿은 사람들도 있었음을 생각하면, 이 말을 다음 말씀에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0-51)”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는, 예수님이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천사들이 예수님 위에서 오르내린다는 말은, 천사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메시아 예수님은 신기하고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는 위대한 예언자가 아니라, 예언자들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분, 즉 ‘하느님이신 분’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0-31).”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그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합니다.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는 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생살이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에 대해서도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 그것은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하게 되는 기도이고,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2)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라는 말씀에서 ‘이 말’은, 바로 이어서 말씀하신 ‘수난 예고 말씀’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그동안 주셨던 가르침들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두 가지 뜻을 하나로 합해서 생각하면, 당신이 십자가 수난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잃지 말라는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서 ‘귀담아들어라.’는 마음에 담아두라는 뜻이 아니라, 잘 듣고, 능동적으로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특히 실천해야 할 말씀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은,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고, ‘온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생각만 해도 되는 생활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야고 2,17),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 말에 대해서, 성모님의 경우를 말하면서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19; 2,51).” 그런데 성모님은 묵상만 하신 분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실천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성모님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묵상하신 것은, 신앙인으로서 실천해야 하는 계명과 가르침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 예수님의 신원 등이었습니다.>
3)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는, “사람들이 나를 죽일 것이다.”입니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었다는 말은,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다는 뜻입니다. 묻는 것도 두려워했다는 말은, 당시의 제자들에게 십자가 수난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 그래서 물어보기도 싫은 일, 피하고 싶기만 한 일이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부활은 그만큼 놀라운 일, 정말로 ‘큰 기쁨’을 주는 일이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십자가는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피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끌어안고 예수님 뒤를 따라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가 일반적인 표현이긴 한데, 뜻을 생각하면 ‘끌어안고 간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