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1일 (토)
(녹)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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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삶 “영적승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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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25-10-10 ㅣ No.185410

2025.10.10.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요엘1,13-20ㄴ 루카11,15-26

 

 

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삶

“영적승리의 삶”

 

 

"주께서 나의 빛 내 구원이시거늘,

 내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께서 내 생명의 바위시거늘,

 내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주님은 빛입니다. 빛 앞에 자취없이 사라지는 어둠입니다. 마귀들, 악령들에 대한 답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의 빛 앞에 흔적없이 사라지는 마귀들과 악령의 어둠의 세력들이요, 이어 영육의 치유와 구원입니다. 그러니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 때 참으로 온전하고 거룩한, 건강한 삶이겠습니다. 이래서 매일미사를 통해 주님을 모시는 은혜가 참으로 고맙습니다.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헝가리 출신의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작품을 스웨덴 한림원이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시켜 주는 강렬하고 통찰력 있는 작품”이란 단 한마디 표현으로 압축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두렵고 불안한 묵시적 상황입니다.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흡사 치열한 영적전쟁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듯 참 위태해 보입니다. 예술의 힘과 더불어 하느님의 힘이, 믿음의 힘이 절박한 시절입니다. 어느 출판평론가는 노벨문학상 선정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작가의 묵시문학이 오늘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고 직시하기 때문이다. 묵시문학은 주로 암담한 현실, 전망과 희망이 없는 세계, 종말론적 쇠락과 회의론적 세계가 지배적인 시대적 암흑기에 태어난다. 신자유주의 극단적 팽창화, 기계에 종속된 비인간화, 극우적 파시즘 형태로 치닫는 인종학살과 전쟁등이 이어지는 오늘의 현실을 배경한 작품이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오늘의 어둡고 혼란한 묵시적 종말론적 상황은 복음이나 요엘서의 묵시적 상황이 재현된 것이며 오늘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답을 찾게 됩니다. 요엘 예언자가 살았던 바빌론 유배이후의 삶도 몹시 위태했던 종말적 묵시적 상황이요 예언자는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 “주님의 날이 다가온다” 외치며 단식하고 기도하며 회개하라 외칩니다. 이런 심판과 구원으로 드러날 주님의 날은 이미 지금 여기서 시작되었고, 오늘 우리의 참된 회개를 촉구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상황도 그대로 종말론적 묵시적 상황이요, 인터넷을 보면 마귀들이, 악령들이 들끓는 참 시끄러운 요즘 세상같습니다. 악마와 마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느님과 함께 할 때 온전한 삶이지만 하느님을 떠나 방황할 때 유혹에 빠져 중독되거나 미치면 누구든 마귀가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온전한 사람은 예수님 한분 뿐인 것 같습니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자 놀라워하는 군중의 호의적인 반응과는 반대로, 일부 불순한 이들은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곡해하고, 일부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분열하지 누구보다 영리한 마귀들은 단합하면 단합했지 결코 어리석게 분열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런 구구한 왜곡된 논란을 일거에 압도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와 있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마귀들, 악마들이 횡행하는 오늘의 종말론적 묵시적 위기시대에 이들을 압도하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인 <예수님>이 예나 이제나 영원히 답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절실한 기도와 회개로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주님 중심의 삶>만이 온전한 구원의 길이자 희망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데는 중립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편에 설 것인지, 말것인지 우리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을 섬기며 예수님의 협력자로 좌파나 우파가 아닌 <예수님파>로 살아야 함을 확인하고 배웁니다. 바로 이어지는 되돌아오는 악령의 경우가 우리에게 참 좋은 교훈이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 마음의 중심을 결코 비워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으로 채워 성령충만한 삶을 살지 않으면 비워져있는 삶의 중심은 <악령>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립니다. 다음 묘사가 실감나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 마음의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악령은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부단한 기도와 회개로 마음의 중심에 살아 계신 주님을 모시지 않으면, 주님의 성령으로 채우지 않으면, 어김없이 그 마음의 빈자리는 <성령>이 아닌 <악령>이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날로 거칠어지고 사나워지고 완고하고 냉담해지는 원인은 마음의 중심에 주님을 모시고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하느님 중심의 온전한,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좋으시다, 영원하신 그 사랑,

 당신의 진실하심, 세세에 미치리라."(시편100,5).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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