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4일 (금)
(녹)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본향을 향하여♬71처~풍수원성당 (원주교구) 1,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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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5-10-22 ㅣ No.104848

  첫 번째 순례길......2021.12.02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맛없는 김밥은 처음먹어본다."

~~♨~~~

"그래도 기냥 묵으요. 모양도없고, 크고, 맛은없어도 전복이랑 소고기랑

이것저것 야채 모두 넣고 급하게 만들은기라요.


단백질. 탄수화물, 비타민, 등등... 영양가는 다들어갔으니 그냥 묵어요.

나도 아침에 날아댕기믄서 간신히 그것도 준비한거라니까요...."


3년전 10주년 본당의 날을 맞아 관산동 전체 신자가 성지순례로

다녀온 강원도 횡성에 있는 풍수원성당은 우리나라 네번째이며,

강원도 첫번째로 지어진 성당으로 정규하아우구스티노 신부와 신자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나무를 해오는 등 건축 자재를 스스로 조달하여 세운 곳이라 한다.


     

풍수원 일대는 오래된 교우촌으로 그시작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던때

박해를 피해 피난처를 찾던 신태보 베드로가 신자 40여명과 함께 이곳에

교우촌을 형성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박해가 거듭될수록 많은 교우들이 깊은산골에 모여들어 큰촌락을

이루며 신앙생활을 80년간 목자없이 공동체를 이루어 오다가 1888년

강원도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한다.


     

특히 풍수원 성체 현양대회는 1920년부터 해마다 지극히 거룩한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을 맞아 거행하고 있으며 신자들에게 성체와 성혈의 신심을

깊이 뿌리내리게 하고 있다고 또한 한다.



사제가 30명 이상 탄생한 성소의 고장 풍수원성당은 신앙의 요람으로 선조들의

얼이 담겨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오늘도 후손들에게 감명을 전해주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거의 본당들이 문이 잠겨있음을 걱정하며 오늘도 벌써 입구부터

하얀줄로 가로막고 있는 성전문을 지나 옆으로 돌아 사이문으로 다가가 살짝 밀어보니

열린다.

안에는 토요일 아침미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듯.... 한 분위기.

얼른 할배를 손짓하여 부르며 하얀줄이 쳐져있는 정문을 밀고 들어간다.


쭈뼛 쭈뼛 하는 할배를 강제로 손 잡아당겨 들어가는데 사무장같은 사람이

들어가면 안된다고 하길레 "미사드리러 가는데요..."

"미사가 다 끝나가는데....???" 얼버무리는 사무장말을 무시한채 들어가

제일 끝자리에 앉아 할배손잡고 주님의 기도를 거룩하게 바친다.


영성체를 하지말자는 할배말을 또 무시하고 기어코 줄따라 나가는 할매뒤를

할배도 엉거주춤 따라 나온다.


"아까 새벽에 방송미사 드리고 안 왔는교?... 영성체 는 해야제..."

휴우~ ! 아부지! 오늘도 이리도 아슬아슬하게 당신찾아 달려온 딸래미를

끄터머리 자리에라도 맞아주시니 백골 난망 감사합니다.


     

원주교구 순례지 검색을 하다가 "풍수원 성당은 통과~ 다녀왔던 곳이니까"

했던 곳이 요즘들어 무지 궁금하고, 간간이 또 기억이 나는 것들은

가브리엘라와 세레나반장과 셋이서 돌계단 오르며 십자가의 길기도를

바쳤던 일과.

 

성모님앞인지. 십자가앞에선지 웃으며 셋이서 사진박았던 일..

풍수원성당 봉사자들이 만든 부페점심을 맛나게 퍼나르며 먹었던 일...

넓은 잔디밭에 앉아 뜨거운 햇살이 싫어 그늘로 그늘로 피해앉아

드리던 야외미사....


내려오며 커다란 건물의 화장실에 들러 아는얼굴들과 이야기 나누었던 일.....

대형버스주차장에서 할매들이 옹기종기 앉아 파는 신토불이의 농산물들을 흥정하던일...

이 기억의 모두다.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가는 성지와 둘이서 여유롭게 가는 순례길에는

또 다른 느낌과 보지못했던 다른 장소들이 또 남아 있을것이라 싶어

삼년이 지난 코로나시절에 다시찾은 풍수원이다.


저만치 성당꼭대기가 보이는 지점서 부터 괜히 가슴이 콩닥~ 거린다.

어떻게 변해있을까?.... 오늘도 기대반....설렘반...

도착하자마자 아슬아슬한 곡예의 미사참례부터가 좋은 징조로 안내하는듯...

가벼운 마음으로 십자가언덕길을 지난날을 생각하며 할배와 오른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오늘 함께하며 올리는 봉헌들 제맘속에 깊이

새겨주소서~"



십자가의길이 끝나는 즈음에 초기 두분 사제의 묘가 나란히 누워있다.

오늘도 감사의 마음으로 고개숙여 표하다.


    

꼭대기에 자잘한 돌멩이들이 박혀있는게.... 성모님의 장미송이

기도 길 같아 또 올라간다.


역시나~ 성모님과 함께 또 올려드리는 묵주의 기도 길... 5단.

그냥 둘러보고 내려가기엔 양심을 두드리는 소리.

"너거들.... 내한테 이것주라. 저것주라 많이도 줏어 섬기제?...

그라모 우째야 되겠노?"...^^


오늘도 쿵짝이 맞는 리노할배와 우리성모님의 방패가 되어 걸어간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아이구~ 반석아부지... 저어기 성모님뒤에 놔둔 잠바쫌 갖다주이소.

추버죽겠네... 바깥에 오래 있었더만 와이리 춥노!~"



내려오는 언덕받이길에 십자가무덤이 하나 있어 또 올라가본다.


"이분..조마리아할머니의 무덤"


"세상에~ 반석아부지... 오늘 최고의 순례지를 만났네요. 이 할매 이야기를

최양업신부 따라살기에서 들은기억이 있는데 풍수원곁에 쪼그만 하꼬방에서

시집에서 쫓겨난 다리저는 젊은댁이 고아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피며 평생을

살다 풍수원에서 늙어 죽었다 카더만...


그게 너무 고마봐서 신부님이 풍수원성당 옆에 무덤을 만들어주어

고마움을 표했다고 하는 이야기속의 그 할매가 여기 누워있는 이야기속의

주인공을 만날줄이야.....


하느님 진짜로 오늘 감사합니더...."

 

                                                            

몸은 추워도 뿌듯한 마음안고 내려오는 길에 성모님 칠고의 정자가 또

눈앞에 나타난다. 예전엔 절대로 못봤던 곳인데...


정자에 앉아 시메온의 칼날예언과/이집트로 피신가신/열두살 소년 예수를

잃어버림과/십자가를 지고가는 골고타언덕/십자가에 못박히신 아들/

주검을 품에안은 / 무덤에 묻히신 아드님의 절절한 아픔을 묵상해보는

눈밝음의 시간을 가져본다.


 


미사를 드렸던 텅빈 넓은 언덕의 잔디광장 과 저만치 옆 자락에 코로나 완

상관없던 교우들의 하하호호~ 잔치상의 나눔들이 보인다.

오늘은 할배와 그 맛없는 김밥을 뜨거운신라면과 함께 또 먹을 참인데...^^

 


옛날 선조들의 삶을 보여주는 생활가재들이며 옹기들의 가마터를 둘러보고

내려오는길에 또 역사박물관이란 처음보는 곳을 할배는 예전에 왔을때

보았다더만서도..

우쨋길레 할매눈에는 생소한 신기한 것들만... 많이도 전시되어있는 이곳은

횡성군에서 관광코스로 또한 만들어 놓은 곳이라 한다.



성전뒤편 성체조배실도 활짝 열려있는 보너스까지 받아들은 할매는 그저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성체앞에 앉아 토마스의 성체찬미가를 올려드리고 나오는 길에

성모님앞에 오늘도 올리는 봉헌의 촛불들을 밝힌다.



성전앞에 새로지은 초가건물이 말쑥하게 단장되어 있고... 넓은 잔디밭을 기어다니며

풀을 뽑는 할매들.. 낙엽들을 쓸어모으는 할배들.... 젊은 자매들... 중년의 형제들...이

토요일 오후시간을 온 성당청소와 성지가꾸기에 열정의 불꽃들을 태우느라... 행복하다.



아마도... 성전앞 새초가 건물은 신태보 선조와 40명의 교우촌의 그날 그집을 연상케라도

할듯한 그림이라고 순전히 할매생각으로 마침표를 찍어본다.


"할배요.... 여게서 세시간이나 보냈네.... 태백에 있는 성내동 성당은 안되겠고,

횡성성당 순례하고 기냥 집으로 가야겠네요.."



 

두 번째 순례길......2023. 07. 29

 

토요일 11시 58분 풍수원성당 도착.....새벽 5시부터 길떠나왔건만...

11시 미사는 끝나고 성전문은 미사때외에는 출입이 금지된다고 안내문이 붙어있다.

할배가 밍기적 거리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 오늘 미사는 또 어디로 가야할꼬?.

성전 문앞에서 인사만 하고, 십자가 언덕길 오르기 시작한다.





추운 겨울날 왔을 때랑은 또 다른 여름 한더위의 산을 오르며 더위속의

무거운 십자가길 따라 성모님 겨드랑이를 껴안는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한계단 한계단 오르는 돌계단 끝에 사제들의 묘가 나란히 누워있고...

십자가 길 저 너머에 아마도 성모님과 또 함께 돌아야하는 묵주기도의 길이 있기도 한것

같기도 한데....! 다른 성지이기도 하고....? 제발 없었으면... 이놈의 햇살이 사람 죽이려하는데.

아뿔사! 저만치 성모님 옷자락 나풀거리며 어서 오라 웃고계시는듯... 맙소사!

오늘도 역시나 그냥 지나쳐 가기엔 양심이 허락치 않는다.

"반석 아부지. 우짜노. 나무그늘만 찾아 저만치서라도 묵주바위 돌아가야지여.."










겨울과 여름날의 묵주의 신비는 역시나 고통의 신비로 걸을 수밖에 없을지라.

뜨거워 죽을것같은 요나의 비명이 아니더라도.... 얼굴이 빠알갛게 달아오르는

일사병의 걱정을 등에업고라도 가자~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저희위해

빌어주소서~"

잃어버리려던 양심을 쪼매라도 찾아 내려가는 길 귀퉁이 작은 묘에는

가난과 겸손의 옷두른 조마리아 할매의 평화로운 안식처에 절하고...

성모님의 칠고의 정자앞에서 또 고개 숙여 머무르다 아래로 내려온다.






풍수원 성당은 1888년 6월 20일 강원도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강원도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신유박해가 일어나던 1801년경으로 박해를 피해

서울과 경기도 용인 등지에 살던 교우들이 강원도나 충청도의 산간 지역으로 숨어들면서부터입니다.

이들 중에서 신태보 베드로는 40여 명의 교우들을 이끌고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으로 들어섰고,

이들이 바로 풍수원 교우촌을 이룬 당사자들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71년 신미양요로 고향을 떠난 많은 교우들을 불러 모아 큰 촌락을 이루었고,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을 자유를 얻기까지 80여 년 동안 목자 없이 평신도들로만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1888년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는 신자들의 열망을 수용하여 풍수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르 메르 신부를 임명했습니다.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규하 신부는 중국인 기술자들과 함께 현재의 성당을 1905년 착공하여

1907년 준공하고 1909년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강원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자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번째 성당인 풍수원 성당은

1982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고,

성당보다 5년 늦은 1912년 건축에 들어간 구 사제관은 원형이 잘 보존된 벽돌조 사제관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2005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런 교회사적, 문화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풍수원 성당은 횡성군과 함께 성당 일대에

유현 문화관광지(바이블 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단계 사업으로 성당 뒤에 강론 광장을 조성하고 유물전시관을 건립하여 2013년 4월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이어 유물전시관 뒤에 가마터와 원(院)터, 쉼터 등을 조성하며 2단계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2018년 6월에는 구 사제관을 복원하여 풍수원 성당 역사관으로 축복식을 갖고 개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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