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6일 (일)
(녹) 연중 제30주일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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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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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10-23 ㅣ No.185780

생손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끔 손톱 옆이 갈라질 때가 있습니다. 가만히 두면 저절로 아물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격이 급해서 그걸 뜯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상처가 덧나고, 일할 때도 불편하곤 합니다. 모기나 벌레가 물어서 부풀어 오르거나, 물집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때도 약을 바르면 곧 아물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격이 급해서 그걸 긁거나 뜯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시간도 더 걸리고 상처가 생기게 됩니다. 내 몸은 며칠 지나면 아물고, 작은 상처로 남지만 기업과 국가의 정책이 그리되면 많은 이가 피해를 보게 됩니다. 기업은 큰 손실을 보게 됩니다. 미국 정부는 전문직 비자의 비용을 1,000불에서 100,000불로 올린다고 합니다. 자국의 전문직 인력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합니다. 그런 정책이 생손앓이가 될는지, 작은 상처를 더 크게 덧나게 하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MAGA’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말의 줄임말입니다. 높은 관세와 강력한 이민국의 단속이 생손앓이가 될는지, 작은 상처를 더 크게 덧나게 하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불가에서는 선을 수행하면서 깨달음에 방해가 되면 부처의 가르침일지라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리라고 이야기합니다. 폴 카퍼는 열린사회와 적들에서 인류의 철학적인 스승이라고 존경받는 플라톤, 칼마르크스를 비판하였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는 뛰어난 지도자가 통치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국가는 자칫 전체주의에 빠질 수 있고, 우생학을 근간으로 타 인종에 대해 억압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폴 카퍼의 열린사회는 뛰어난 지도자의 통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발전시키는 나라였습니다. 이런 국가는 발전은 느릴 수 있겠지만 국가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칼마르크스는 역사를 필연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봉건사회, 자본주의 사회, 다음은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역사 인식은 맞지도 않고, 있지도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역사는 필연의 과정이고, 인류는 그런 필연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자기모순에 빠지는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행하고 맙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절망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희망을 발견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성사와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었고, 교황님 말씀처럼 나눔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임을 자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찾듯이, 우리는 위기의 시대 속에서도 희망의 징표를 발견했습니다.

 

인간에게는 경멸보다 찬미할 이유가 더 많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병 속에서도 서로 돕고 나누며 인간다움을 지켜가는 모습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희망의 시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상처를 긁어 덧내는 조급함이 아니라, 인내와 지혜로 상처가 치유되기를 기다릴 줄 아는 눈, 그리고 시대의 징조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읽어내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라도 주님께 나아가는 길을 방해한다면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입니다.

 

주님,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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