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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8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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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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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5-10-27 ㅣ No.185871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루카 13,10-17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사람들은 보통 귀찮거나 힘들거나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해서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그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거리를 찾습니다. 더구나 그 일이 자비나 사랑처럼 실천하도록 권장되는 덕행이라면,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자기 이미지가 안좋아질까봐 사람들 앞에서 눈치가 보인다면 더더욱 그렇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회당장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에게 ‘안식일 법’은 참 ‘편리한’ 규정이었을 것입니다.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 그 날이 안식일이라는 점만 내세우면 그것을 ‘합법적’으로 외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해도 남들 눈치를 보며 주눅들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그만큼 계명을 더 철저히 지킨다는 점을 내세우며 생색낼 수 있었지요. 회당장은 ‘엿새’가 아니라 ‘열 여덟 해’가 있었어도 허리가 굽어 고통받는 그 여인을 돕지 않았을 겁니다.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겪어온 그 고통이 얼마나 아프고 괴로운지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다른 이의 고통이나 슬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요. 그러나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주님은 그녀를 처음 본 그 짧은 순간에 그녀가 겪어온 길고도 깊은 고통을 헤아리십니다. 사랑이 있으면 ‘~해야한다’는 당위에 얽매이기보다 ‘~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을 따르게 되는 법입니다.

 

신명기 5장에 나오는 안식일 규정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규정을 실행하는 근본정신이 그저 안식일에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세상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시기어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해 주셨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 은총에 감사하며 나 혼자만 쉬려고 들지 않고, 다른 사람들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이 쉴 수 있게 다시 말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배려하고 챙겨주는 날입니다. 다른 이가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해 준다는 것은 그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그들이 세상의 근심 걱정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하느님 사랑을 느끼며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안하려는 태도로는 그렇게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 태도는 안식일을 ‘아무것도 아닌 날’로 만들어버릴 뿐이지요.

 

오늘 복음을 보면 ‘안식일’이라는 말 뒤에 어떤 말을 덧붙이는가에 따라 안식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회당장은 ‘~에는’이라는 한정 접미사를 붙여 안식일의 의미를 축소함으로써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하면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반면 예수님은 ‘~일지라도’라는 양보의 접미사를 붙여 안식일 규정의 내용이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도출하십니다. 비록 그날이 안식일일지라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따라, 고통을 겪는 이웃의 딱한 사정을 헤아리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겁니다. 회당장의 입장이 우리를 걱정과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따르는 모습이라면, 예수님의 입장은 우리를 하느님 자녀로서 기쁘고 당당하게 살게 하는 ‘성령’을 따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성령을 따라 사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 일이 나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아픈 손가락’을 더 꼭 안아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음을 느끼기에, 하느님의 은총에 힘 입어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리는 저 사람도 하느님으로부터 나만큼 사랑받는 자녀이자 나와 같은 믿음으로 묶인 한 형제임을 알기에 그렇지요. 그런 이들만이 하느님 나라가 주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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