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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9일 (일)
(백)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평신도 주일)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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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내가 바로 ‘바리사이’이고, 내가 바로 ‘잃은 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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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11-06 ㅣ No.186119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1-10)”

1) 예수님께서 ‘되찾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은전의 비유’를

말씀하신 상황을 겉으로만 보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에게 맞서는 상황으로, 즉 그들과 예수님의 관계가

대립 관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관점일 뿐이고,

예수님 쪽에서 보면 대립 관계 같은 것은 없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잃은 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준으로는 ‘세리들과 죄인들’만 ‘잃은 양’인 것이

아니라,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잃은 양’이고,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잃은 양’입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를 읽을 때, 자기 자신을 ‘세리들’ 편에

두지 않고, 그렇다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편에 두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리들 쪽에 속하지도 않고, 바리사이들 쪽에

속하지도 않으면, 어디에 속해 있는 것일까?

사실 그런 것을 따져 묻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찾으려고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서 세리들과 바리사이들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모든 사람’은 ‘나 자신’과는 떨어져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즉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를’ 찾으려고(구원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 즉 ‘나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찾으려고 오신 것에 감사드리고 기뻐해야

할 것이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회개와 구원을 함께

기뻐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나는, 정말로 용납할 수 없는 죄인이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의 회개를 인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구원받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예수님처럼 그를 용서하고,

그의 회개와 구원을 예수님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타이르려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투덜거리고 불만을

품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사랑하신 분입니다.>

2)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은, “저 사람이 정말로 메시아라면 우리하고만

어울려야지 왜 죄인들과 어울리는가?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니 저 사람은 메시아가 아니라 죄인이다.”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부르셨을 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이미 했던 말입니다(마태 9,11).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 말씀을 하셨습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2ㄴ-13).”

이 말씀에는, “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왔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만난다.” 라는 뜻도 들어 있고, “너희는 너희도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라는 말씀은,

“너희는 형식적으로만 하느님을 섬기지 말고, 정말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신앙인이 되어라.”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랑 실천’이고, 그리고 ‘모두 함께

회개해서, 모두 함께 구원받는 것’입니다.

3) 사랑이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플 때 함께 아파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하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세리들이든지 바리사이들이든지 간에, 회개하지 않고

구원에서 멀어지는 사람 때문에 하느님께서 슬퍼하실 때

하느님과 함께 슬퍼하고, 또 누가 되었든지 간에 회개해서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사람 때문에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때

하느님과 함께 기뻐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하늘에서(하느님께서) 크게

기뻐한다는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 하나 때문에

하느님께서 크게 슬퍼하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신앙인’인가?

아니면 하느님께 슬픔만 드리는 ‘죄인’인가?

잃은 양인가? 되찾은 양인가?>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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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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