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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3일 (목)
(녹)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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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하느님의 벗 “지혜를 사랑하라, 주님을 찬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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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07:46 ㅣ No.186264

2025.11.13.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지혜7,22ㄴ-8,1 루카17,20-25

 

 

하느님의 벗

“지혜를 사랑하라, 주님을 찬미하라”

 

 

“당신 말씀 밝히시면, 

 미련한 이들이 깨치나이다.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가르쳐 주소서.”(시편119;130,135)

 

오늘 화답송 시편 119장에서 두 구절입니다. <주님의 법>이라는 주제로 무려 176절까지 계속되는 시편중 가장 긴 장이나 내용은 참 풍부합니다. 옛 현자 다산의 지혜로운 말씀에 이어 어제 레오 교황의 말씀도 지혜로웠고 시의적절했습니다.

 

“초연함이란 욕망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것이다.”<다산>

“도전으로 가득찬 시대, 그리스도를 그 중심에 모셔라. 수도원들은 어둠의 시대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주님의 섬김의 학교가 되라. 예수님을 모두에게 가져다 주라.”<레오14세 교황>

“형제애 없이, 우리는 살 수 없다. 형제애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모두가 형제자매들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레오14세 교황>

 

지혜를 최우선으로 선택하십시오. 지혜를 열렬히 항구히 사랑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듯, 연인을 사랑하듯 그렇게 지혜를 사랑하십시오. 지혜에 대한 청정욕의 사랑은 무죄이며 언제나 좋습니다. 그리고 지혜를 훈련하여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지혜의 찬가>라 해도 좋겠습니다.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안에 머무르면서도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에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하느님의 벗이, 지혜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인간 마음의 고질적 병이자 인간 재앙과 불행의 원천인 무지에 대한 답도 지혜뿐입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허무등 모두가 무지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지혜의 찬가 내용이 참 풍부하여 공부하는 마음으로 전부 인용합니다.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정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지혜는 무엇인가?

역시 계속 이어지는 풍부한 내용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청정욕을 북돋웁니다.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다. 지혜는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내지 못한다.”

 

이런 지혜는 그대로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무지의 병, 무지의 악, 무지의 죄에 대한 궁극의 치유와 예방도 지혜뿐임을 깨닫습니다. 지혜대신 말씀을, 사랑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진선미, 신망애 모두가 지혜에 속함을 봅니다. 이런 지혜의 화신이, 하느님의 지혜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주님과의 우정이 깊어질수록 하느님의 벗이 되어 살 수 있으니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바로 이런 지혜가 오늘 복음에 답을 줍니다. 주님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보라, 여기에 있다.’또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바로 내 삶의 자리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삽니다. 언젠가 써놨던 글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자리를 

 찾지 않는다.

 자리를 

 탓하지 않는다.

 

 그 어디든 

 뿌리내리면

 거기가 고향이고 

 꽃자리이고 하느님의 나라이다”

 

이런 하느님의 벗같은 이들은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지혜가 존재를 결정합니다.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에 초연한 자유를 누립니다. 오늘이 내일입니다. 오늘 잘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됩니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주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지혜로운 하느님의 벗이 되어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게 되니 결코 부화뇌동도 경거망동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깨어 살아야 할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날로 삶의 중심인 주님께 깊이 뿌리 내릴 때, 날로 새로운 안정과 평화의 정주의 삶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벗이 되어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시편34,2-3).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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