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7일 (월)
(백)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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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하느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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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11-15 ㅣ No.186308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1-8)”

1)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라는 말은,

기도가 이루어질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으로

보이는데, 7절의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라는

말씀과 8절의 “그들에게 지체 없이” 라는 말씀은,

기도하면 곧바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서로 모순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다르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 ‘하느님께서 정하신 가장 좋은 때’와 ‘인간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때’가 다르다는 것도 나타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무엇을 주시든지 간에 하느님께서 주실 때

그것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곧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내가 정해 놓은 때’까지만 기도하고 그냥 멈추면 안 됩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응답을 얻을 때까지 정말로

오래 걸리는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기도하자마자 곧바로 이루어지는 때도 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이루어지는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그것을 내가 잘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가?”입니다.

하느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이 정하신 ‘가장 좋은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은, 하느님의 기준으로는

‘곧바로, 지체 없이’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청하는 그것만’을, ‘내가 정한 그때까지’

주셔야 한다고 고집부리면 안 됩니다.

기도는 떼쓰는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자비에 호소하고 간청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하느님의 자비도 믿어야 하고,

자비를 믿는다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2)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하느님이 그런 재판관과 같다는 말씀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은 그런 재판관과는 다르다는 말씀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재판관은 과부의 끈질긴 요청이 귀찮아서 마지못해

억지로 들어 주지만, 하느님은 인간의 청을 절대로 귀찮게

여기지 않으시는 분이고, 언제나 항상 기꺼이 들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귀찮게 해 드리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11장에 있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카 11,8).”

이 말씀은, “인간 세상에서는 줄곧 졸라대야만 겨우 들어

주는 일이 많지만,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청하면 곧바로 들어 주신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3) 비유에서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 ‘올바른 판결’이라는

말은, ‘정의의 실현’을 뜻하는 말입니다.

묵시록 6장을 보면, 순교자들이 이렇게 외칩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님, 저희가 흘린 피에 대하여

땅의 주민들을 심판하고 복수하시는 것을

언제까지 미루시렵니까?(묵시 6,10)”

이 말은, ‘정의의 심판’을 언제 실행하실 것인지, 그 심판과

처벌이 왜 이렇게 늦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묻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의 온갖 불의를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또 정의가 완전히 실현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게 ‘언제’ 이루어지는 것인지는 모릅니다.

정말로 억울하게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몹시 답답한 일입니다.

1절의 ‘낙심하지 말고’를 “불의가 정의보다 힘이 더 센

것처럼 보여도 낙심하지 말고”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불의도 하느님의 정의보다 힘이 더 셀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불의를 심판하지 않고

그냥 두시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마태 5,45; 2베드 3,8-9), ‘하느님의 정의’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을 믿어야 하고, 우리 자신도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8절의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라는

말씀은, 믿음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재림 때까지 믿음을 잃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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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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