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7일 (월)
(백)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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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 다해, 세계 가난한 이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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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5-11-16 ㅣ No.186322

[연중 제33주일 다해,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루카 21,5-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사람은 자기 힘으로 자기의 미래를 보장하려고 합니다. 건강한 미래를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몸에 좋다는 음식과 약을 챙겨먹습니다. 다른 이들로부터 존경과 대우를 받는 명예로운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 애를 씁니다.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고 재테크에 열을 올립니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힘 있는 사람과 친분을 쌓아두거나 여러가지 보험에 가입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준비들을 꼼꼼히 따져가며 잘 하는 이들은 지혜롭다는 칭찬을 듣지요. 하지만 하느님을 나의 주님으로 섬기는 신앙생활은 하느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그분께서 이끌어 가시는대로 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처럼 내가 아름답고 화려하게 잘 쌓아올린 ‘공든 탑’이 산산이 부서지기도 합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그 탑이 무너지면 자기 삶도 끝이라고 여겨 절망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래서는 안되겠지요. 오늘 복음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사고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리고 이 세상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종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종말’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마음 속에 두려움과 걱정이 생깁니다. 세상이 멸망하면 나도 그 세상과 함께 멸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난이나 사고를 대비하는 것처럼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종말을 대비하려고 하지요. 그런 이들은 크게 두 가지를 궁금해합니다. 하나는 종말이 ‘언제’ 일어나는지 그 시기이고, 다른 하나는 종말이 임박했을 때 어떤 ‘표징’이 일어나는지 그 방식입니다. 그것을 알면 동물들이 갑자기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화산 폭발을 예측하듯, 땅에서 갑자기 유황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보고 지진을 예측하듯, 종말을 미리 예측하여 피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오직 아버지만 아시기에 종말의 때는 미리 예측할 수 없습니다. 또한 특정 지역에 일어나는 재난과 달리 종말은 온 세상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에 미리 안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지요. 그러니 자기 힘으로 종말을 대비하거나 피해보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합니다. “종말=멸망”, “세상의 멸망=나의 멸망”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종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나 인식 때문에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 자신이 곧 재림예수라 주장하는 사기꾼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이 당장 망할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심각한 재난이 닥쳐와도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종말의 때가 되면 온 세상에 그런 크고 무서운 재난이 닥쳐오긴 하겠지만 그것이 곧 ‘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구원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번째 의미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신뢰와 의탁입니다. 사이비 교주들은 전쟁이 나거나 재난이 닥치면 당장이라도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사람들에게 겁을 줍니다. 그렇게 하여 더 많은 이들을 자기 세력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착취하여 이익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바로 벌을 주려고 벼르고 계시는 무서운 분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당신 품으로 돌아오기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녀인 우리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기를 기다려주시는 자비롭고 사랑 넘치는 분이시지요. 그러니 큰 재난이 닥쳐온다고 해서 두려움에 빠져 우왕좌왕할 게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굳게 믿으며 그분께 자신을 의탁해야 합니다. 두번째 의미는 심판에 대한 준비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이루어지는게 아닙니다. 종말의 때가 되면 모든 이들이 육신과 영혼을 지닌 완전한 존재로 부활하여 하느님 앞에 서게 되고, 이 세상에서 각자가 행한 행실대로 갚음을 받게 됩니다. 즉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느님 뜻을 충실히 실천한 의인들은 영원한 복을 누리는 하느님 나라로 가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느님 뜻을 거스르며 자기 욕망만 따른 죄인들은 영원한 고통을 겪는 지옥으로 가게 되지요. 그러니 우리는 눈 앞에 닥친 재난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하느님 사랑에서 완전히 단절되어 영원한 고통을 겪는 ‘지옥’을 두려워하며,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사는 동안 기회될 때마다 하느님 뜻을 충실히 실천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의미를 알고 믿는다고 해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삶을 힘들고 괴롭게 만드는 ‘재난’은 물리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는 이유로, 주님의 계명과 가르침을 실천하며 산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며 핍박 받는 일이 부지기수로 생기는 겁니다. 더구나 그 배척과 핍박이 나와 가까운 사람, 내가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온다면 그 아픔과 괴로움이 더 커지지요. 단순히 물리적인 고통을 겪거나 물질적인 피해를 입어서 아픈 게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미움을 받아야 하는게 마음 아프고, 소중한 이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과 고독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의 아픔과 괴로움이 워낙 크다보니, 물리적인 고통을 잘 참아내던 이들도 자주 무너지곤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 이름 때문에, 당신을 믿고 따르는 신앙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우리가 정말 소중한 것을 잃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말 중요하고 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사람들로부터 미움 받을 각오까지 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친한 사람들과 지옥에서 함께 고통받으려고 신앙생활 하는게 아니지요. 나와 너 우리 모두가 하느님 사랑 안에 깊이 머무르는 게 중요합니다. 그분 사랑 안에 머무르고 있으면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로워도 언젠가 서로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 복된 날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바로 ‘인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고 하십니다. 고통과 시련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괴롭고 힘들어도, 온 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린 것 같은 외로움과 고독 때문에 신앙생활에 회의가 생겨도, 그 모든 시간은 다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누릴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는 ‘과정’이니 포기하거나 다른 길로 벗어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살아 구원받는 방법은 신앙의 길을 끝까지, 착실히 걷는 것 뿐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충실히 걸으면 세상이 멸망해도 우리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종말을 두려워하지만 말고 지금 여기에서 종말을 살아야겠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뜻에 깨어있는 자세로 그분 뜻에 맞는 올바른 선택을 해나가야겠습니다. 구원은 죽은 다음에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을 주님과 함께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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