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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종말의 날’이 모두에게 ‘재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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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6).”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루카 21,8-9).”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0-19).”
1) 성경에서 종말의 상황을 ‘재난’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큰 ‘재난’이 일어나면 그 일을 ‘종말’로, 또는 ‘종말의 표징’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심판과 처벌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이미 하느님 나라가, 즉 종말이 시작되었고, 지금이라는 시간은 종말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재난 자체가 종말이나 종말의 표징인 것은 아니고, 회개하라는 경고로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종말의 날’은 기쁜 축제일이 될 것이고,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에게만 끔찍한 재난이 될 것입니다.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억압하던 제국의 몰락이, 억압당하면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맞이하는 기쁜 일이 되고, 망하는 제국 쪽에만 비참한 재난이 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독재자가 탄핵되었을 때, 그 일이 시민들 쪽에는 기쁜 축제가 되고, 독재자와 그 추종 세력들에게만 재난이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종말과 재림 때, 또는 임종을 맞이할 때, 구원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가? 아니면 심판받을 죄인으로 서게 되는가? 바로 그 점입니다. 그 순간이 기쁜 축제가 될 것인지, 무서운 재난이 될 것인지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성전 정화’ 때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요한 2,19). 또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라고 꾸짖으셨습니다(마르 11,17). ‘강도들의 소굴’은 허물어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당시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때가 곧 종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9절의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라는 말씀은, 사람들이 ‘종말의 표징’이라고 생각할 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지만, 그런 일들이 ‘종말의 표징’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가 종말이 아니었음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가짜 메시아들과 가짜 재림 예수들과 사이비 종말론자들이 사람들을 속이는 일은 옛날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이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전쟁, 자연재난, 기근, 전염병 등은 인류 역사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실제로 종말처럼 보이는 대규모 재난이 발생할 때가 있는데, 그런 재난으로 죽은 사람들에게는 그 재난이 종말과 같겠지만, 사실 그런 일들은 인류 전체가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하는 ‘사랑의 과제’이고, 그냥 ‘지나가는 일’일 뿐입니다.
3) 예수님께서 특별히 당부하시는 것은, 박해를 받아도 흔들리지 말고 신앙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박해가 아무리 심해도 박해 자체가 종말은 아닙니다. 신앙인들의 처지는 ‘이리 떼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양들’과 같은 처지이고(루카 10,3), 그래서 박해와 유혹이 신앙을 흔들어대는 상황을 늘 견뎌야 합니다. 그런 상황을 잘 견디고 신앙을 지킨 사람은 진짜 종말의 날이 왔을 때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박해를 ‘신앙을 증언할 기회’로 삼아라.” 라는 뜻입니다. <박해를 견디면서 흔들림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 자체가, 신앙을 증언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항상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마태 28,20). 살다 보면 우주 한가운데에 혼자만 있는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만날 수도 있는데, 그런 때일수록 더욱더, ‘항상 함께 계시는 주님’의 보호와 도움을 믿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33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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