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7일 (월)
(백)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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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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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11-16 ㅣ No.186331

3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날에는 본당 성가대 형제님과 함께 갔습니다. 우연히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14시간 장거리 비행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마일리지가 많았던 형제님은 공항 내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3주간의 휴가 일정 중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모님이 있는 비봉 추모관입니다. 아버지는 2011년 하느님의 품으로 먼저 가셨고, 어머니는 9년 후인 2020년 아버지가 있는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원래 고향의 선산은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데, 2007비봉 추모관에 부모님이 계실 집을 마련하였습니다. 서울에서는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여서 좋았습니다. 추모관에서 부모님을 위해 연도를 바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강인하였고, 지혜로웠습니다. 어머니는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아버지는 머리카락이 일찍 하얗게 되었고, 혈압이 높았고, 치아가 좋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머리카락이 검었고, 혈압도 정상이었고, 치아가 좋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성격과 어머니의 체질을 닮았으면 싶었는데 아버지의 체질과 어머니의 성격을 닮았습니다. 이 또한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프루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남겨 주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구부러지는 데까지 눈 닿는 데까지 멀리 굽어보면서/ 그리고 다른 한길을 택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좋은 이유가 있는 길을, 풀이 우거지고 별로 닳지 않았기에/ 그 점을 말하자면, 발자취로 닳은 건 두 길이 사실 비슷했지만/ 그리고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밟혀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있었다./ ,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길은 계속 길로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과연 여기 돌아올지 의심하면서도/ 어디에선가 먼 먼 훗날/ 나는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걸어온 길을 택했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어쩌면 신앙은 두 갈래의 길에서 선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영광을 따르는 길이 있고, 세상의 뜻과 나의 영광을 따르는 길이 있습니다. 노아는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방주를 만들었고, 방주는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구원의 방주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따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아담은 세상의 뜻을 따랐습니다. 뱀의 유혹에 빠졌던 아담은 낙원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카인은 세상의 뜻을 따랐습니다. 시기와 질투에 빠졌던 카인은 동생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습니다. 세관장 자캐오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자캐오와 그 가족은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하느님을 따랐습니다. 박해와 순교가 있었지만,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파라오는 세상의 뜻을 따랐습니다. 권력을 위해서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세상의 뜻을 따랐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랐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이란 말이 있습니다. 손가락은 달을 향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달을 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것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오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주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늘 독서를 보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이방인의 풍습을 따르게 됩니다.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니,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려고 했을 때, 달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부정한 것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음식으로 더럽혀지거나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기로 작정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 갔다.”

 

예전에 승강기의 게시판에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더욱 푸르다.’ 모든 것이 푸르른 여름에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시련의 때, 고난의 때에는 유독 그 푸름이 돋보이는 나무가 있는 것처럼 주변을 보면 그렇게 자신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흘러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줄 아는 용기와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흘러가는 삶은 살아지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자비를 청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살아도 결국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소경은 주님께 간절하게 외칩니다. ‘주님 보게 해 주십시오.’ 주님은 소경의 간절함을 보시고, 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들은 빠르고 편하고, 쉬운 길만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느리고,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선택과 결정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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