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2일 (토)
(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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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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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5-11-20 ㅣ No.186405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루카 19,41-44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의 마지막 시기를 맞아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처음에 자기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아가며, “높은 데서 호산나”라고 찬미의 노래를 불러가며 예수님을 환영했지만, 금새 태도를 바꾸어 그분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배척했지요. 예수님이 자신들이 기대하고 바라던 ‘능력의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놀라운 능력으로 자기들을 핍박하는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조국에 독립과 번영을 가져다 줄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절대군주’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분께서 자신들이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그분께 등을 돌린 것이지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슬픔과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십니다. ‘평화의 도성’이라는 뜻의 예루살렘에 살면서도, 정작 자신들에게 참된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들이, 세속적인 힘과 권력에 기대어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가짜 평화를 누리기에 급급하는 그들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욕망을 안정적으로, 더 많이 추구할 수 있는 상태가 평화라고 속삭입니다. 재물, 권력, 지식 등을 남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그 압도적인 힘으로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상황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질 뿐입니다.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하느님의 뜻과 계명을 충실히 따르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 순명과 실천을 통해 하느님 섭리 속을 걸으면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것이지요. 참 평화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나에게 가장 이로운 일이자 참된 행복을 누리는 길임을 믿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순교성인들이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고 의연했던 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굳게 믿으며 어떻게든 그분 뜻 안에 머무르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주민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보다 자기 능력과 재산을, 세속적인 권력을 더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보다 제 뜻과 탐욕을 우선적으로 따랐습니다. 그 결과 기원 후 70년 경 완전히 멸망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지요.

 

그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 나를 찾아오시어 손 내미시는 그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때가 되면 즉시 잘못된 길을 가던 것을 바로잡고 그분께로 돌아서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작고 약한 이의 모습으로 오시는 그분께 나의 작은 정성과 노력으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즉각적인 회개와 사랑의 실천으로 구원의 때를 놓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절호의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을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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