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5일 (화)
(녹)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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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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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5-11-24 ㅣ No.186480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루카 21,1-4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눈을 통해 교회의 헌금함에 예물을 봉헌하는 서로 다른 마음가짐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첫번째로 보게 되는건 빈곤한 과부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당시 근동지방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매우 낮았고 경제활동도 할 수 없었기에 남편 혹은 아들에게 의존해야만 했지요. 그런데 이 여인은 남편을 일찍 여의었고, 그녀 혼자 예물을 내러 온 정황상 슬하에 아들도 없어 보입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답답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되도록 내버려두시는 하느님을 원망하지도, 자기보다 좋은 여건에서 살아가는 다른 여인들을 질투하지도 않지요.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활비 전부를 예물로 바칩니다. 그녀는 헌금함에 예물을 바침으로써, 주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의탁한 셈입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고, 저도 당신의 것이니 죽이든 살리든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그녀의 간절하면서도 단호한 기도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두번째로 보게 되는 건 부자들의 마음입니다. 그들은 재물을 풍족하게 소유하고 있었기에 많은 돈을 헌금함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낸 돈은 ‘예물’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내면서도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 뜻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얼마나 내야 내 체면이 서려나?’, ‘혹시 너무 적게 내서 망신을 당하지는 않을까?’, ‘괜히 나 혼자 오버해서 너무 많이 낸거면 좀 아까운데...’ 또한 자기가 낸 돈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곳에 쓰이기를 바라며 거기에서 보람과 기쁨을 찾으려 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가와 보상을 바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봉헌했으니 하느님께서 더 큰 은총과 복을 주실 거라고,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이지요.

 

예수님은 두 마음 중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칭찬하십니다. 그녀가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과 정성을 오롯히 바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봉헌금의 액수가 아니라 당신께 봉헌하는 그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 과부의 온전한 봉헌은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몸과 피, 즉 당신의 삶 전부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끝까지 다 내어놓으셨지요. 참된 봉헌의 의미는 돈을 내는 행위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여 사랑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 과부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 모두를 희생하여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큰 사랑을 드러냈고, 하느님께서는 그 사랑을 보시고 가진 것을 모두 내놓아 텅 빈 그녀의 두 손에 당신의 은총과 축복을 가득 담아 주셨을 겁니다. 그런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으로 하는 게 봉헌임을 기억하며, 기회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누고 베풀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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