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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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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 2,1-12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주님 성탄 대축일 낮미사 복음을 보면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진리의 빛이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빛이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죄악의 어둠 속에 살고 있던 이들은 그분께서 오셨음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점은 우리의 ‘상식’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두운 밤에 전등을 다 꺼놓고 있으면 방 구석에서 빛나는 아주 희미한 빛조차 너무나 밝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에는 그 빛이 너무 신경쓰여 잠이 안와서 다른 것으로 가려놓기도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왜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빛’으로 오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건 아마도 빛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 깊이 박혀있던 ‘안일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구세주가 오시는 그 때가 지금은 아니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잠들어버려, 한밤 중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러 나가지 못한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그런 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께 경배하러 왔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에 헤로데가,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다 모아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유다 땅 베들레헴’이라고 즉시 답하지요. 그들은 예언서에 기록된 바를 바탕으로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태어나실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럼에도 ‘등잔 밑이 어두웠던’ 이유는 ‘설마 메시아가 지금 태어나시지는 않겠지’하는 안일한 마음 때문입니다. 그 마음 때문에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확고한 믿음으로, 간절한 희망으로 발전되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동방박사들은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도 구세주께서 태어나셨음을 알아보았습니다. 첫째, 구세주께서 태어나시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 간절함으로 그분의 탄생을 알리는 ‘표징’을 찾았고 그 결과 상서로운 별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둘째,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주저없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걱정과 두려움으로 미적대다가 때를 놓쳤다면 ‘주님의 별’을 놓쳐버렸겠지요.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말겠다는 의지로, 그 과정에 어떤 고난이 따르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결단으로 즉시 떠났기에 주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셋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믿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허름한 마굿간 한 구석에, 작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누워계신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실 임금이심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낸 동방박사들은 그분을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누군가를 ‘경배’한다는 것은 그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찬미를 드린다는 뜻이지요. 대제국 페르시아에서 높은 관직에 있던 이들이 아기 예수님 앞에 납작 엎드려 그분을 경배한 겁니다. 사제 서품식 때 주님의 제단 앞에 납작 엎드리는 수품 후보자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심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저 ‘일회성’으로 그칠 ‘가식’이 아니라, 온 마음과 정성을 담아 준비한 선물로 주님을 생각하는 자기들의 진심을 드러냈지요. 권력자에게 대가를 바라며 바쳤다면 ‘뇌물’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게 그저 감사해서, 그분의 탄생을 축하드리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바쳤기에 ‘예물’이 되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봉헌이 그래야 합니다. 대가를 바라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가 바치는 작은 성의가 그분께 기쁨이 되기를 바라며 드려야 합니다.
그들은 고이 간직해온 보물상자를 열어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쳤습니다. 황금은 이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힘입니다. 그 황금을 예수님께 봉헌한 것은 내 뜻을 고집하지 않고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며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며 그분께 자신을 봉헌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충만한 은총과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유향은 예로부터 성전에서 하느님께 거룩한 제사를 올릴 때 태우던 향료였습니다. 부족한 인간이 하느님께 올리는 가장 경건한 예가 바로 향이지요. 그것을 아기 예수님께 바친 것은 그분이 참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하느님으로 믿고 따르는 이들 앞에서 무한한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몰약은 죽은 이를 염할 때 쓰는 약품입니다. 몰약을 예수님께 봉헌한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분 앞에서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부족하고 약한 인간임을 겸허하게 인정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그분께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주님께 예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며 따르는 것이 우리가 바쳐야 할 ‘황금’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뜻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 우리가 바쳐야 할 ‘유향’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바쳐야 할 ‘몰약’입니다.
경배를 마친 동방박사들은 꿈에서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습니다. ‘유다인의 임금이 될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달라’는 헤로데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보다 하느님 뜻에 순명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동방박사들처럼 세상의 뜻과 하느님의 뜻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되지요. 지금 당장은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큰 이득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익숙하고 편한 기존의 방식을 포기하고 아직 잘 몰라서 불안한 방식을, 더 힘들고 어려워서 불편한 방식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따라야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의 소명입니다. 동방박사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이스라엘에 갈 때와는 ‘다른 길’로 간 것처럼, 하느님 뜻을 따르기 위해 어렵고 힘든 길을 마다않고 가야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주님의 뒤를 따라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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