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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 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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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일 가해] 마태 5,13-16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그리스도인의 '소명', 들을 때마다 참 부담스러운 단어입니다. 세상사에 찌들고 지친 나머지 주님 사랑 안에서 편안하게 쉬고 싶어서, 이런 저런 일로 나를 자꾸 괴롭히고 못살게구는 사람들을 피해 주님 품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싶어서 '신앙'을 받아들였는데, 뭐 그리 지키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지 참 부답스럽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앙생활이란걸 괜히 시작했나 싶습니다. 주님도 복음도 모른 채 제 맘대로 편안하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소명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도저히 신앙생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담그면" 그 장이 주는 깊은 맛을 느낄 수 없고, 그 장을 이용해 만드는 수많은 요리들도 맛볼 수 없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힘듦과 괴로움, 귀찮음과 부담, 억울함과 공허함 같은 '구더기'들을 잘 걷어내고, 주님을 향한 우리 믿음의 '장'을 잘 숙성시켜야 삶의 참된 기쁨과 행복이라는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나 혼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다른 이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고 배려하고 나눔으로써 그들이 '살 맛'나게 만들어주면 적어도 내 주변은 ‘살 맛 나는 세상’이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나 혼자 독야청청 빛나서는 외롭고 공허할 뿐이지만, 나의 이해와 관심, 용서와 포용으로 다른 이를 밝게 비추면 그가 지닌 참된 아름다움과 선함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밝게 비추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리가,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모두가 분명하게 깨닫게 되지요.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라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함으로써만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너무나 큰 사랑을 받는 특별한 존재이기에, 구원과 참된 행복이라는 선물을 약속받은 선택된 존재이기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만큼 더 큰 십자가를 맡기신 겁니다. 그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지만,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내가 세상의 거센 풍랑에 맞서다 지쳐 쓰러질 때, 그 십자가가 나를 든든하게 지탱하는 ‘지지대’가 되어 주지요. 그러니 내가 받은 소명이 무겁고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그 소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소명을 다하려면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 속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나만 손해보고 희생하는 게 억울하다며 ‘내 것’을 지키려고 들면, 소금은 본연의 ‘맛’을 낼 수 없지요. 즉 자기 자신에게도, 그리고 세상에게도 무의미하고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 버려지고 짓밟히는 건 당연한 결과이지요. 자신을 지키려고 둘렀던 이기심이라는 갑옷이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된 꼴입니다. 소금이 음식에 녹아들면 그 형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지만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게 아닙니다. 음식이라는 더 큰 존재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오직 ‘짠 맛’밖에 느낄 수 없었던 소금의 삶에 풍요롭고 다채로운 맛이 더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랑과 희생 그리고 봉사를 통해 이웃과 형제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가면, 삶의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던 그들은 ‘살 맛’이 날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의 ‘살 맛’이 하나로 어우러지면 나 혼자 살았을 때엔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풍성하고 다채로운 기쁨들을 충만하게 누리게 되지요. 그러니 ‘세상의 소금’이라는 소명은 나와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유익한 일인 겁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는 소명을 다하려면 ‘산 위’로, ‘등경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빛은 세상 만물을 밝게 비춤으로써 우리가 그 참모습을 볼 수 있게 하지요. 그것이 빛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의미입니다. 그리고 빛이 그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으로 그 빛을 가려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이자 어둠을 몰아내는 등불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야 어찌되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에 빠져 산 아래로 숨지 않도록, 주님의 가르침과 계명대로 살다 손해보는 걸 억울하게 여기는 탐욕이 내 마음을 오그라들게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믿지 않는 이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참고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 손해보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내 마음에 심은 믿음이라는 씨앗이 잘 자라도록 흙을 덮어주는 일입니다. 실천이라는 흙을 두텁게 덮어두지 않으면 내 신앙이 고통과 시련이라는 따가운 빛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 맛’나게 만들고, 사람들을 진리의 빛으로 밝혀주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지만, 그 희생을 통해 비로소 하느님을 닮은 완전한 존재로 변화되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해서는 안되는, ‘하느님 나라’라는 논에 심어지기 위해 이 세상에서 특별히 뽑힌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는 구급차의 모습에, 공사현장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는 노동자들의 모습에,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요리조리 차들을 피해가며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의 모습에 마음이 쓰여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위해 화살기도를 바칩니다. 나도 먹고살기 팍팍하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작게나마 정성을 보탭니다. 따뜻한 관심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밉니다. 인류를 구하거나 나라를 지키는 위대한 영웅은 못되더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남을 위해 바치는 소박한 전구기도와 기쁘게 나누는 작은 정성, 기꺼이 행하는 사소한 양보와 희생이 이 세상을 그래도 살만한 세상, 살 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어 갑니다. 아니 꼭 그렇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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