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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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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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8-07-07 ㅣ No.121982


 

두 아들 둬서 이젠 모두 살림을 나가서 저들끼리 알콩달콩 살고

큰 돈은 없어도 사는데 쪼들리지 않고, 주위에 아픈 사람 없고...

요새처럼만 걱정 없이 살면 새삼스레 뭘 더 바랄까 싶은데.......

아침마다 옥탑에만 올라가면 이걸 어찌해야 돼나 하며 고민을 한다.


작년만 해도 아침마다 올라와 밤새 안녕 했습니까 하고 문안을 올려가며 귀한 대접을 받았던 복숭아가 금년에는 너무 많이 달려서 고민을 하게끔 한다.


봄에 가지마다 꽃이 다닥다닥 피어서 온 동네 벌 나비들이 모두 몰려와서 춤을 추며 놀고 가더니만 꽃이 지자마자 꽃송이마다 열매를 하나씩 맺어 금년에는 100개가 넘게 복숭아가 달렸다.

 


문제는 바로 그때 아내가 뭐라고 그러든 말든 인정사정없이 솎았어야 하는 건데

“가만 두면 저절로 정리될 거니까 만지지 말고 가만히 둬요.”하는 아내 말만 믿었더니 반만 저절로 정리가 되고 제법 복숭아 맛이 들었는데도 40개가 넘게 아직도 나무에 야무지게 매달려있다.


그래보았자 과수원이나 밭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플라스틱 화분에서 자라는 작은 복숭아나무 한 그루에 그토록 올망졸망 달렸으니 복숭아 크기는 겨우 조막만 하다.


하지만 어느 새 복숭아 빛깔이 다섯 살 박이 우리 손자 놈 볼처럼 뽀얗고 거죽에 은빛나는 솜털조차 뽀송뽀송한 게 마치 손자 놈 얼굴 보는 것 같은데 그걸 무지막지하게 따려 하니 올라갔던 손이 저절로 내려진다.

“난 모르겠어. 초장에 솎아버리자고 그러니까 당신이 그냥 두라고 했잖아? 당신이 알아서 따든 말든 난 몰라.”하고 역정을 내고 옥탑을 내려왔지만 다음날 아침에 올라가 보면 어제 그대로 있다.


작년에는 처음에 한 15개쯤 새끼복숭아가 달렸다가 8개, 7개, 6개 하는 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줄어들어 밤새 바람만 세게 불어도 아침에 우리 내외가 다투듯이 옥탑으로 올라가 복숭아부터 살피는 지극정성을 다 하고 며느리조차 저희 시어머니 안부 묻기 전에 “아버님, 옥탑 복숭아는요?” 했었는데 이젠 복숭아가 저절로 떨어져주기를 바라고 앉아있으니 사람 마음처럼 간사한 게 또 있을까 싶다.


드디어 오늘 아침에 나는 아내에게 버럭 고함으로 역정을 내고 말았다.

“어떻게 좀 정리하라고 했는데 왜 저렇게 달려있게 두느냐고? 그러다 복숭아 맛이나 보겠어? 몇 개라도 제대로 된 복숭아가 달려 있어야 맛을 보든지 하지.....”

“별 걸 다 성질내시네. 따려고 어찌해 보려니까 너무 이뻐서 못 따겠는 걸 어떡해요? 나더러 그러지 말고 당신 손으로 직접 따든지...”

아내가 그러고 자빠진다.

“그러니까 애초에 내가 솎는다고 가위 달라고 했을 때 가위나 주었으면 됐지.” 하며 내가 볼멘소리를 하니 아내가 나무에서 복숭아 하나를 얼른 따서 내 입에 물린다.

“복숭아 살결이 오성(손자이름)이 살결처럼 뽀얗고 부드러운데 그걸 어떻게 따요. 한번 씹어 먹어 봐요 작아도 복숭아 맛은 나니까...”

 

그 작은 것이 어느새 새큼 달싸한 맛이 제법 복숭아 맛을 낸다.

 

역시 그랬다. 저나 나나 연속극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찔끔찔끔 눈물바람 하는 주제에 아내라고 해서 별 뾰족한 수가 있었으랴.

더구나 자기도 그 복숭아를 보고 나처럼 손자 놈 살결까지 떠올렸으니...

이제는 도저히 어쩔 방도가 없다. 그냥 저대로 두고 보는 수밖에.....


그까짓 복숭아 과일가게에 가서 몇 푼 주고 사먹으면 그만이지 그걸로 아내와 더 다투다가는 내 힘만 빠질 것 같다.

안 건드릴 테니 제발 무럭무럭 자라만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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