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자유게시판

자꾸 그러면 시동 확 걸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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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8-07-11 ㅣ No.122095

 

아내가 인터넷을 할 줄 모른다. 컴퓨터 자체를 만질 줄 모르는 것이다.

다행인지 아닌지를 잘 모르겠다.

집에 컴이 한 대 뿐이니 아내가 인터넷에 재미를 붙여서, 내가 하고 싶을 때 못하게 하면 컴을 만질 줄 모르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컴을 전혀 모르면서도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는 있어서 가끔 엉뚱한 말을 해서 사람 속을 뒤집을 때는 차라리 내가 나서서 가르쳐 주고 싶을 때도 있다.

 

하루는 내가 컴 앞에 앉아 급한 메일을 쓰고 앉았는데 느닷없이 오더니 갑자기

“당신 뭐해요? 혹시 채팅하는 거 아녜요?” 한다.

“채팅? 채팅이 뭔지나 알고 당신이 그러는 거야?”하고 되물으니

“모르는 여자하고 채팅으로 말 주고받고 그러다가 바깥에서 만나고 그런다고 하던데?” 한다.

“말을 주고받다니? 마이크도 카메라도 붙어 있지 않은 컴으로 내가 무슨 재주로 말을 주고받아? 이 사람 어디 가서 주워듣기는 한 모양인데. 마음 푹 놓으시지. 이 컴으로는 안 되니깐”

“말 주고받고 하는 것이야 글자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거지, 꼭 마이크로만 주고받남?”

“에그 이 사람, 내가 미쳤냐? 여자가 없어서 겨우 채팅으로 여자를 만나게? 줄로 섰다.

 그것도 한 줄도 아니고 두 줄로 내리 쫘악....”하고 한참 웃었다.

 

우리 문화원 각종문화강좌에 오는 여성들만 해도 어림잡아 하루에 300명이 넘으니 나는 사실 꽃들 속에 둘러싸여 사는 것과 다름없다. 

오전에는 30대 주부들이 와서 재즈댄스니 에어로빅이니 스포츠댄스 등을 하면서 땀 냄새를 확 뿌려놓고 가고, 1시부터는 40대 50대 주부가 주축인 가요교실 수강생 100여명이 넘게 와서 1시간 반 동안 화장품 냄새를 진동해 놓고 가고.....

모두가 내게는 소중한 고객들이지만 여성들이다 보니 남자들 같으면 그냥 넘어가도 될, 별일 아닌 것을 가지고 사무실로 쪼르르 올라와서 나를 찾는데, 물론 내가 나이도 들고, 또한 오랫동안 낯이 익어서 자기들 딴엔 편하게 여겨져서 그러려니 하며 받아주다 보면 어떤 날은 마치 온종일 여자들 속에 치여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또 일면 생각하면 이 나이에 이 꽃 저 꽃 만발한 꽃밭에서 사는 것도 같고....

그런 내가 채팅까지 할 까닭이 없는데도 아내한테서 애무한 말을 들은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채팅은커녕 컴으로 하는 고스톱이며 바둑 같은 것도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른다.

그 기능 자체가 내 컴에는 갖춰있지를 않다.

문제는, 내가 언젠가 스팸 메일이 들어와 있어서 그게 뭔가 하고 클릭 했더니 눈이 번쩍 뜨이는(?) 장면이 눈앞에 어지럽게 왔다 갔다 하기에 급히 아내를 불러 그놈의 ‘야동’ 구경을 시켜준 것이 탈이었다.

“이제 보니 당신, 맨날 컴 앞에 앉아 있더니 이딴 거나 보는 모양이네, 제발 죄 짓지 마쇼잉” 하더니 그 이후부터는 컴하는데 와서 가끔씩 화면을 힐끔거리며 쳐다보곤 나간다.

“뭘 봐? 이 사람아. 글 쓰는데 방해되니까 저리 나가 있어”하며 나는 의심 받는 것 같아 자연 언성을 높이고......


그런 아내가 어제는 성당에 다녀오더니

“당신 굿뉴스에 또 뭐라고 썼어요?”하고 난리를 부린다.

“굿뉴스에 쓰긴 뭘 써?” 하고 물었더니

“우리 옥탑에 복숭아 때문에 사람들이 추수 안 하냐고 야단이잖아?”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본당에도 내 글을 보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사무장님부터

“형님, 왜 요새는 글을 안 올리시고 그래요. 게시판에 들어가 봐도 형님 글이 없어서요?”하는 걸 보면......

“아. 그거, 복숭아가 하도 탐스러워서 내가 자랑 좀 하려고 사진으로 올렸지. 근데 누가 감히 내 허락 없이 추수를 한다고 그래?” 했더니 그 말에는 대답도 않고

“어서 켜 봐요. 뭐라고 썼나....”하며 컴 앞에 자기가 먼저 가서 앉는다.

돋보기를 끼고 한참을 들여다 본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거짓말 보태기는? 내가 언제 오성(손자)이 볼 같다 그랬어? 애기 볼 같다 그랬지....”한다.

“그게 무슨 거짓말이야? 애기 볼이나 오성이 볼이나 그게 그거지. 오성이는 애기 아닌가? 겨우 다섯 살인데...”

트집 잡을 게 없으니까 아주 별 걸 다 트집을 잡으려고 든다.

요새 와서는 종종 그런 식으로 아내가 내 글 쓴 것을 검열을 하려드니 기분이 영 땡감 씹는 맛이다.

작가란 것이 이왕이면 재미있게 양념도 넣고 살도 붙이고 그래야 글이 맛깔이 나는 것인데 한참 시끄러운 쇠고기 원산지표시 파동이 우리 집에까지 들이닥쳤나 내용의 진위여부에, 심지어 표현까지 검열을 받아야 할 판이니 내 글맛이 제대로 나지를 않는 것 같아서 말이다.


엊그제도 두꺼운 철판 깔고 쪽 팔리는 이야기를 게시판에 올린 것을 또 읽어보자고 해서 보여주었더니 그것은 토를 달지 않던데 아마도 검열관 자기얘기를 흡족하게 표현해 주어서 그런가?.....


날씨도 더운데 엄처시하에 사노라고 내 요새 정말로 땀을 많이 흘리고 산다.

이참에 어디 시원한 데로 바람이나 쐬러 며칠 다녀와 버릴까?

보따리 싸서 차 뒤 트렁크에 숨겨 놨다가 또 내가 쓴 글을 가지고 공연히 트집 잡을 때 그때를 정확히 맞춰서 

“당신 때문에 나 이젠 글도 못 쓰겠어. 나 당분간 당신 때문에 파업한다.”하고 며칠 신나게 돌아다니다 집에 들와도 자기 때문에 그리됐으니 할 말이 없겠지?....

오냐, 좋다. 또 한번만 그래봐라, 그땐 키 들고 나가서 승용차에 시동을 확 걸어버릴 테니깐.... 에이, 덥다 더워 이눔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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