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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생 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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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8-07-26 ㅣ No.122409

 

빗줄기가 굵어서 시야가 흐릴 정도로 거칠게 내리는 폭우 속을 뚫고 버스가 떠났다.

방학을 맞은 우리 구 청소년 38명을 관광버스에 싣고 2박 3일 여정으로 내 고향인

경북영주 수도리(무섬마을)에 있는 예술촌으로 자연생태학습을 떠나보냈다.

수도리 마을은 마치 안동하회마을처럼 물이 마을을 한바퀴 빙 둘러 흐르는 아담한 농촌마을이다.

 

아이들이 그곳에 있는 예술촌에 묵으면서 도자기도 만들고 천연재료로 염색도 해 보고

옥수수며, 오이 따기, 감자 캐기 등을 하며, 다음날엔 봉화 명호에 가서 레프팅을 하고

돌아와서, 마지막 날 귀로에는 영주부석사와 순흥 소수서원, 선비촌과 금성단을 둘러보는 문화유적답사까지 하게 된다.

내 딴에는 2박 3일 알찬 프로그램 만드노라고 사전답사까지 하며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하고 계약을 했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지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계약금이며 숙식비를 지불했으니 취소를 하거나 연기를 할 입장도 아니어서 고심 끝에 억수처럼 내리는 빗속에서 애들을 떠나보내고 돌아서려니 마음이 안쓰러웠지만 오후부터 다행히 비가 그쳐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전문문화해설사를 붙이고, 내가 인솔을 하면서 사무국장과 직원을 데리고 가려고 계획했었지만 갑자기 감독관청인 구청 공무원 2명이 함께 가겠다는 바람에 나는 사양을 하고 돌아서 왔다.

저들하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나까지 가게 되면 모처럼 호랑이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저들에게 내가 마치 늙은 사자가 으흠 하고 앉아있는 형상이 될 것 같아서였다.


지방문화원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원래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주민들의 문화 향수와 문화복지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에 양 단체가 떼어놓으려 해도 뗄 수 없는 사이이다 보니 싫든 좋든 구청공무원들을 내 집안 식구처럼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지방문화원 재정형편상 몇 안 되는 직원을 가지고 많게는 1만여 명이 참관하는 대형문화행사를 치를 수는 없으니 행사 때마다 구청직원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 내 수하인 사무국장한테서 연락이 오기를 그쪽에는 날씨가 좋아서 걸어다니기는 좋은데 예술촌 인근 수도리 마을 백사장이 완전 흙탕물로 침수가 되어 예정된 체험행사를 할 수가 없어 마지막 날 하기로 한 부석사 문화탐방을 오늘 앞당겨서 하기로 일정을 변경했다고 한다.

하필이면 영주, 봉화에 비가 더 많이 왔으니.....아무래도 래프팅은 취소를 해야 할 것 같아 근처 명호 소수력발전소 견학으로 돌리라고 지시를 했다.


월요일 오후에 일행들이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이런 식으로 노심초사하며 기다려야 할지, 내일 아침 첫 기차를 타고서라도 현장에 내려가 봐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내 마음이 안절부절 이다.

아이들 38명에 어른이 버스기사까지 무려 7명이나 갔으니 괜찮겠지.

사무국장한테 안전제일주의로 하라고 그만큼 얘기하고 또 버스기사에게도 안전운행이 뭣보다 우선이라고 몇 번을 당부했으니 괜찮겠지.

하지만 눈치를 받더라도 그냥 그 차를 타고 함께 갈 것을 그랬나 하는 후회도 생긴다.


몇 달 전에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 업무차 갈 일이 있어 도착했더니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덕수궁 돌담 맞은 편 돌 의자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는데  누가 반색을 하며

“어머! 권 국장님 아니셔요? 국장님이 여기엔 웬 일이셔요?” 하는 것이었다.

기억 날 것도 같고 안 날 것도 같고 그래서 얼굴을 바라보는데

“기억 안 나셔요? 저요, 사회복지과에 있던 정00.” 하며 자기를 밝혔다.

“언제 시청으로 전근을 했어?” 대답은 그리하면서도 이름까지는 기억이 안 나서 정양이 나를 기억해주는 게 그저 고마웠을 뿐이었다.

다른 방문자는 입구에서 출입목적과 만날 사람을 출입대장에 기재하고 명패를 교부받아야만 들어 갈 수 있음에도 나는 미스 정을 따라 그녀의 사무실까지 올라가서 응접탁자에 앉아 차 대접을 받았다.

차를 마신 후에 내가 방문목적으로 삼았던 일을 보고자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잠간만 더 쉬었다 가라고 하면서 여기 저기 전화를 하는 것 같더니 우리 구청에 근무하다가 본청인 서울시청으로 들어간 직원들이 줄줄이 내가  있는 그 과로 찾아오는 것이었다. 이름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모두가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그날 시청업무를 끝내고 서소문별관 현관문을 나오면서 갑자기 내 콧날이 시큰했었던 순간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참말로 내가 인생을 괜찮게 살았구나. 내가 만약 저들에게 보고싶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내가 와 있다는 소리에 바쁜 직원들이 아홉 명이나 나를 보러 달려왔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남보다 미남도 아니고 성질도 별난데 어째 저들이 자기 직속상관도 아니었던 내가 거기 왔다는 소리에 바쁜 일을 접어 놓고 모두가 반갑다고 달려와 인사를 하고 간단 말인가...

지금 와서 생각해도 그때 그 행복했던 기분을 영 잊을 수가 없다.


그래 그러면서 사는 거다. 내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이라도 늘 따뜻이 가지며

상대가 누구이든 진정으로 상대를 배려하면서 사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내 남은 인생을 살아갈 길이구나 하는 것을 깊이 깨달은 날이기도 했다.

 

우리 구 청소년들이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자연의 품에 안겨 모두가 가슴마다 아름다운 추억들을 가득히 담아와 주기를 주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나의 주님이시어, 그들을 보살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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