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5일 (토)
(녹) 연중 제7주간 토요일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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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 장가(?) 가는 날, 동네 처녀 통곡한다 -최종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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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곤 [guevara72] 쪽지 캡슐

2008-06-26 ㅣ No.36988

 
▲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제단 앞에 엎드린 젊은이들
 
ⓒ 최종수
 
지난 18일(목) 오후 2시경, 여러 야채를 파는 할머니와 꼬막을 파는 아저씨를 지나쳐 녹색신호등을 따라 길을 건넌다.

흰색 횡단선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동태와 냉이, 귤과 사과 등을 팔고 있다. 인도를 따라 줄지어선 노점상들, 중앙시장 도로변에 위치한 성당에는 사제서품 인파로 술렁인다.

세상을 위해 세상 것들을 버려야 하는 9명의 젊은이들. 성당 뒤편 사제관 앞에서 흰색 장백의를 입고 선배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동반자와 함께 가는 인생길도 쉽지 않는데 홀로 가는 그 길을 축하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을 가야하는 젊은이들, 그 환한 미소가 거룩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스승 예수의 길, 그 '착한 목자' 성가를 따라 선배 신부들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아들을 이웃과 세상에 봉헌한 부모와 가족들의 눈가에 벌써 맑은 이슬방울들이 촉촉하게 맺혀 있다.

"나, 야훼가 너를 부른다. 정의를 세우라고 너를 부른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선포된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응송 노래에 이어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생활원칙으로 삼으시오." 사도 바오로의 서간이 봉독되었다.

 
▲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가 눈물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
 
ⓒ 최종수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하여라." 루가의 복음 말씀이 선포되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는 우리의 청을 받아 주시어 9명의 젊은이가 주님의 제단 앞에 나왔습니다.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지켜 주고 너를 세워 인류와 계약을 맺으니 너는 만국의 빛이 되리라."는 주교님의 강론이 이어졌다.

이어서 서품식 예절이 진행되었다.

"부제품을 받을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사제품을 받을 부제는 앞으로 나오십시오."
"전동 본당 공현식"
"예! 여기 있습니다!"
"황등 본당 염규영!"
"예! 여기 있습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한 마디 말에 일생을 맡겨야 하는 젊은이들. 그 대답이 작다고 해서 그 고백의 의무와 책임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우렁차고 당당한 대답이 창문을 열고 성당 밖까지 울려 퍼진다. 본인에게는 얼마나 가슴 떨리는 고백이겠는가. 고독한 십자가의 길로 떠나보내는 부모에게는 얼마나 가슴을 쥐어짜는 눈물의 대답이며 또한 얼마나 대견스러운 고백이겠는가.

"여러분은 독신으로 살아갈 준비를 해 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마음을 주 그리스도께 봉헌한다는 증거로서 천국을 위하고 하느님과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이 독신을 종신토록 지키겠습니까?"
"예, 지키겠습니다!"

여러 가지 서약 중에서도 가장 힘든 서약을 당당하게 고백한다. 너무도 당당해서 더 가슴이 아픈 사람은 마른자리만 내어준 부모일 것이다. 부부 사랑의 결정체인 자식, 그 누구보다도 피 끓는 젊은이에게 독신의 길이 얼마나 가혹한 형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부족한 인간이 눈물로 바치는 가장 겸손한 기도가 아닐까.
 
ⓒ 최종수
 
서제서품의 꽃은 고독한 십자가의 길을 먼저 가신 많은 성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성인호칭기도' 시간이다. 제단 앞에 깔린 빨간 부직포 두루마리 위에 9명의 젊은이들이 엎드린다. 카펫이나 융단이 아닌 노란 테이프로 연결한 부직포가 사제의 청빈 생활을 반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땅에 엎드린 가장 비천한 자로서 세속에 죽고, 오직 스승 예수처럼 이웃과 세상을 위해 봉사할 것을 드러내는 예식이다.

서품자들의 얼굴 아래 방석마저도 빨갛다. 인간적인 욕정과 탐욕, 권력과 출세의 세상에 대한 죽음을 상징한다. 사제들과 신자들도 바닥에 꿇은 무릎을 직각으로 세우고 두 손을 간절히 모은다.

"성 마리아,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성 베드로,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2층 성가대에서 천사의 나팔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성인들의 호칭 기도. 그 거룩한 기도이지만 어찌 나약한 인간으로서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으리. 좋은 집과 자동차, 선택하지 않는 세상의 길이 어찌 환하지 않으랴. '독신과 고난의 길을 과연 갈 수 있을까' 어찌 두려움이 없으리.

이리도 부족한 저를 스승 예수의 정의와 평화의 도구로 불러주심에 어찌 한없는 눈물을 쏟지 않으랴. 이마를 바치고 있는 열 손가락을 타고 짠물이 흘러내린다. 흥건히 젖어버린 방석, 어찌 영혼에도 거룩한 부르심이 새겨지지 않겠는가.

 
▲ 전통에 따라 선배신부들의 안수로 축성되는 서품자들, 하느님과 세상을 위해 제단에서 첫 미사를 드린다.
 
ⓒ 최종수
 
사제서품의 절정과 완성은 안수식이다. 주교와 선배신부들의 안수로 서품예식이 끝이 난다. 백발의 노사제부터 아우 신부를 보는 막둥이 신부까지 두 손을 머리에 얹고 축복을 빈다. 사제로서 하느님과 세상을 위한 첫 미사를 드리라고 본당신부가 제의를 입혀 준다. 주교는 양손을 성유로 축성한다.

그리고 주교는 미사의 도구인 성작과 상반을 수여한다. 다음은 신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이 봉헌한 빵과 포도주로 주교와 함께 제단에서 첫 미사를 바친다. 오늘 서품자들이 진리를 위해 몸 바치는 사람들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라는 기도도 하늘로 오른다.

다음은 축하식, 금년에 신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8명과 재학생 3명이 새 사제와 주교에게 꽃다발을 전달한다. 그리고 주교가 서품자들이 선택한 성서 구절 좌우명을 친필로 쓴 패를 선물하고, 교구사제단 대표 신부와 신자 대표가 선물을 증정한다.

 
▲ 아버지 없이 두 아들을 하느님과 세상을 위해 봉헌한 어머니가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만다.
 
ⓒ 최종수
 
사제단의 친목회장 신부와 신자 대표의 축사에 이어 서품자 대표 신부가 답사를 한다.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는 순서, 주교가 새 신부들과 새 신부들의 부모를 직접 소개한다. 신자들을 향해 선 부모, 아버지 대신 작은 아버지와 큰 형도 서 있다. 아버지 없이 두 아들을 사제로 봉헌한 어머니가 참았던 눈물보따리를 그만 풀어놓고 만다.

군대를 포함해서 사제가 되기까지 10년은 인고의 세월이다. 7일의 짧은 생애를 노래하기 위해 7년을 땅속 애벌레로 기다려야 하는 매미, 오늘은 그런 기다림이 꽃으로 피어나는 날이다. 그러나 그 꽃은 단 하루 만에 지고 만다. 첫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떨어진 꽃자리에 길고긴 사제의 여정이 열리게 된다. 제의를 입고 관으로 들어갈 때에서야 완성되는 여정. 아니 부모에게는 천국에 가서도 아들 사제를 위해 기도해야만 하는 숙명의 십자가이다.

 
▲ 무릎을 꿇고 축복을 청하는 주교에게 축복을 내리는 새 사제들. 서품자들과 신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축가를 부른다.
 
ⓒ 최종수
 
이웃과 세상을 위해 스스로 자신을 바치는 봉헌의 길이기에 사제의 길이 힘들지만 거룩한 길인가 보다. 사제로서 하느님의 축복을 이웃과 세상에 처음으로 빌어주는 강복, 안수로서 사제 직무를 맡긴 주교도 제대 앞 계단에 무릎 꿇어 축복을 청한다. 이 얼마나 성스러운 축복인가.

기념촬영 후에 주교를 모시고 신학생들과 서품자들이 '천주님의 뜻일사 우리의 영광'축가를 부른다. 아버지와 아들의 축하잔치처럼 흥겹다. 아, 이 또한 얼마나 가슴 찡한 노래인가.

성당 앞마당에는 본당청년들이 프랑카드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친다.

"세진이 장가가는 날, 동네 처녀 통곡하네!"
"재나 우리 얘기 어떡해!"

하느님과 결혼한 사람, 스스로 하느님의 종이 된 사람.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고자의 길'을 이웃과 세상을 섬기며 걸어갈 것이다.

 
▲ “세진이 장가가는 날, 동네 처녀 통곡하네!” “재나 우리 얘기 어떡해!”청년들의 희망은 ‘진리를 위해 몸 바치는 사람들’일 것이다.
 
ⓒ 최종수
 

 

덧붙이는 글 | 서품자들에게 바치는 시입니다.

나 그 분과 함께


엄마 손잡고 성당에 갔을 때
하얀 제의를 입은 신부님이 좋아서
고사리 두 손에 꿈 하나 키웠네

사춘기 여드름도
고자의 길이라는 친구들의 놀림도
산처럼 푸른 꿈 꺾지는 못했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기 위해
가방 하나 꾸려
홀로 신학교에 들어갔었네

밤송이 널브러진
산책로 같은 고독한 그 길이, 너무 힘들어
이불보따리를 싸기도 했네

그런 날이면 옥상에 올라
소주병 하나 놓고서
바람에 서걱이는 대나무숲처럼 울기도 했었네

그렇게 잠이 들어
축축한 베갯머리에서 눈을 뜨는 아침이면
어머니의 젖는 기도를 보고 말았네

아무렇지도 않게 찬물에 세수를 하고
옷장에서 수단을 꺼내 입고
긴 복도를 따라 새벽미사에 갔었네

선택하지 않은 길에는
환한 꽃들과 새들의 웃음이
세상 가득 느껴지기도 했었네

한쪽을 잃어버린 일생을
반쪽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 반쪽이 그리워 밤새 뒤척이기도 했었네

어디만큼 걸어왔을까
들판의 허수아비 같은 농촌,
길거리에 흩어진 노동의 꿈,
아파트 숲처럼 탐욕스런 자본,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세상도 보았네

하지만 날 부르는 그 분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라 하시니
두어군데 구멍난 그물일지라도 던지려 합니다

깊은 산에서 홀로 밤을 새우신 그 분
철부지 사제를 위해
일생의 밤을 새우실 나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와 손잡고 새벽을 걸어갈 것입니다

전대에 아무것도 없길 바라신 그 분
이미 가득한 전대이지만
전대 하나만으로 허기진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려 합니다

홀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그 분과
정의의 십자가를 지고서
평화의 피땀을 흘리면서
골고타 같은 세상을 오르겠습니다

나와 함께 걸어가시는 그 분
그 길이 비록 험하고 두려울지라도
고독과 절망의 길일지라도
나 그 분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나 그 분과 함께 평화의 길을 갈 것입니다

http://blog.ohmynews.com/asemansa/entry/사제들-장가-가는-날-동네-처녀-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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