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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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꽃다운 젊음을 바친 사람 -최종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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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곤 [guevara72] 쪽지 캡슐

2008-07-25 ㅣ No.37629

타인을 위해 일생을 바친다는 것, 그것도 본능을 거슬러 올라가는 삶이란 쉽지 않습니다. 물질적 쾌락적 욕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일생을 다 산 연배에도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젊은 십대의 나이에 자신의 삶은 세상을 위해 바치겠다는 삶은 어쩌면 불가능한 삶인지도 모릅니다.

사제 지망생, 십대의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가 군대를 포함해서 10년동안 수련을 받아야 하는 현역 신학생이 있고, 대학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신학교에 편입하는 예비역 신학생들도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들어온 아우 신학생들을 볼 때마다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그 어린 나이에 세상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송두리채 바치겠다는, 그 길에서 경외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제 17일 사제서품식이 있었습니다.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서품식 내내 첫 마음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빛이 바래가고 있는 첫 마음은 다시금 추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서품식을 마치고 새 사제 피로연에 갔습니다. 새 사제 아버님께 소주 한 잔 따라 드렸습니다. 아버님이 소주 잔을 건네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품식 중에 4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살아계셨으면 손자가 신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신부가 되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 서른인데도 아직도 어리게만 느껴집니다.

제 동생이 신학교에 입학해서 짐을 실어다 주려고 신학교를 처음 갔습니다. 그 때는 동생이 앞으로 고생 많이 하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리고 1남 2녀, 둘째인 외아들이 신학교에 갔을 때 짐을 실어다 주려고 다시 신학교에 갔습니다. 아들을 신학교에 두고 오는데 그렇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집에 돌아와서 아들이 쓰던 방에 들어갔어요. 텅 빈 방을 보니 참았던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부모의 마음이 그런가 봅니다.
아들이 신부가 되었지만 아마도 눈을 감을 때까지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두 딸 시집보내고 아들 하나 하느님께 장가보냈으니 부모 노릇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 부모의 길이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 신부를 위해 눈을 감을 때까지 기도하고 봉사해야 하니까요.”

오늘은 새 사제가 처음으로 하느님과 세상을 위해 첫미사를 올리는 날입니다. 멀리 제주도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첫미사를 축하해 주기 위해 신부들과 신자들이 모여왔습니다. 서른 살의 사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애띤 새 사제가 첫 미사를 올립니다. 자신의 전 존재를 하느님께 봉헌한 새 사제의 첫미사, 20대 가장 꽃다운 젊음을 제물로 바쳐 드리는 '세상의 죄를 없애는 희생제물인 하느님의 어린 양' 그 자체였습니다.
신학교 추천서를 써 주신 김윤섭 신부님이 축하강론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에 읽어주신 주님께 의탁하며 드리는 기도가 새 사제의 두려운 마음을 감싸주었습니다.

주여,
오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 지기를 기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 가도록 힘을 주소서.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험한 길 이라도
주님과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을 주소서.
--최민순 신부--

세상의 위해 드리는 미사의 절정은 성체축성입니다. 자신의 젊음을 바쳐 제단에 오른 사제가 인간과 세상을 위해 처음으로 밀떡과 포도주를 축성하기 때문입니다. 그 첫 축성한 빵과 포도주를 부모님께 첫 번째로 모셔드립니다. 어쩌면 사제는 부모님의 기도와 눈물로 피어나는 꽃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첫미사가 끝나고 축하식이 이어졌습니다. 본당신부님의 가족 소개에 이어 삼촌 신부의 덕담이 이어졌습니다.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제 생활은 오늘처럼 화려하게 조명받는 삶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큰 코 다칩니다. 소박하고 겸손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제가 새 사제를 위해 마련한 '사제는' 축시를 낭송했습니다.

사제는 
들판의 앉은뱅이꽃처럼
제단 아래 엎드린
겸손의 꽃

햇빛을 전하는 보름달처럼
사랑의 햇살을 전하는
신의 사람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길 잃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영혼의 인도자

뿌리를 키우는 물처럼
가난한 사람을 살찌우는
세상의 보호자

골고타 언덕의 스승처럼
세상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구원의 길

사제는
하늘과 땅을 잇는 무지개처럼
신과 인간 사람과 자연을 잇는
영원한 천상의 중재자

첫 미사를 축하하며 -최종수 신부


새 사제의 답사에서 내내 참았던 눈물보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눈물이 많습니다. 첫 미사 때 씩씩하게 미사를 드리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저를 위해 그동안 노심초사하신 부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저 몰래 눈물을 흘리신다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서는 눈물 한 번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도 보일 수 없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우는 새 사제의 눈물에 제 손의 디카도 흐느끼며 울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우는 새 사제의 눈물, 그 어떤 훌륭한 연설이나 강론도 이처럼 감동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감동을 준 것은 새 사제의 부모님 앞에서 새 사제와 신학생들이 '어버이 은혜'를 부르고 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올리는 깜짝 이벤트였습니다. 새 사제만 우는 것이 아니라 신부와 신학생도 부모님과 신자도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노래하며 모두가 하느님과 함께 울었습니다.

사제는 부모의 기도를 먹고 사제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아들을 사제로 봉헌하고 멀리서 아들이 홀로 가는 길을 기도로 노심초사로 함께 하실 부모님이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시도록, 새 사제가 세상과 이웃을 위해 하느님 보시기에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볼 때 힘들고 험한 가시밭 길일지라도, 그 길을 숙명처럼 씩씩하고 행복하게 걸어가기를.....,  

 blog.ohmynews.com/asemansa/entry/20대-꽃다운-젊음을-바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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