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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내 건축의 원점: 카푸치나스 사크라멘타리아스 수녀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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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5-01 ㅣ No.555289

[내 삶을 흔든 작품] 내 건축의 원점

카푸치나스 사크라멘타리아스 수녀원 성당


김광현


사실 사람들은 매일매일의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런데도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귀하다. 이러한 일상 속에 하느님의 입김이 언제나 함께하고 계시고, 그 입김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한 가치를 불어넣어 주시기 때문이다.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함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언제나 스치는 바람, 걸어가는 길과 그곳에서 쳐다보는 나뭇잎, 재잘대는 아이들의 소리, 그리고 이웃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풍경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은 소중하다.

“God is in the details.”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면 “하느님은 세부(細部)에 있다.”는 말이다. 또 이와 비슷하게 “God is in every leaf of every tree.” 곧 “하느님께서는 모든 나무의 모든 잎에 계신다.”라는 말도 있다.

하느님께서는 작은 것, 평범한 것을 아주 좋아하셔서 언제나 그것들과 함께해 주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 주위에 있는 아주 익숙한 사물이나 사람 안에, 그것도 아주 작은 사물과 사람 안에 참된 가치와 진실이 있고, 이미 위대한 손길이 스며들어 있다.


수녀들만의 아주 작은 성당

멕시코 시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트랄판에는 ‘카푸치나스 사크라멘타리아스(Capuchinas Sacramentarias)’라는 수녀원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아주 작은 성당이 있다. 수녀들만의 성당이다. 수녀원의 외관은 오래된 마을 속에 묻혀있어서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수녀원과 성당을 설계한 이는 멕시코의 건축가 거장 루이스 바라간이다. 그는 가톨릭의 상징을 표현한 자기 집과 많은 종교 시설을 설계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런데 이 수녀원과 성당은 의뢰받은 것이 아니라 바라간 자신이 4년 동안 설계하고 완성하여 수녀들에게 헌납한 것이다.

주차장과 같은 제법 큰 문을 열고 들어가면 파티오(안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얼핏 보아 언젠가 가본 적이 있는 듯 작고 소박한 중정이다. 십자가가 붙어있는 스터코(회반죽) 벽과, 바라간이 곧잘 사용하던 노란격자, 그리고 제단에 꽃을 바칠 때를 위해 만든 검은 돌로 만든 작은 수조가 있을 뿐이다.

크기로 말하면 한 20명 정도 앉으면 꽉 차는 아주 작은 성당이다. 그러나 이 성당은 내가 본 그 어떤 성당보다도 일생토록 잊을 수 없는 전율과 감동을 던져준 건축이다.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선 순간, 나는 정수리 한가운데를 날카롭게 스쳐가는 그 무언가를 느꼈다. 공간이 주는 정밀(靜謐)함이다. 제단 측면으로 다가가면, 참으로 바라간에게만 가능한 심오한 빛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한다.

제대 옆, 트랜셉트를 가로막고 있는 노란 격자창을 통해 제단을 바라보았다. 빛과 면이 만들어내는 이 공간은 이 격자창을 통해 앞에 있는 물체가 다 사라지는 듯이 보인다. 물체의 거리가 얼마인지 잘 알아낼 수 없다.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게 느껴진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제단 반대 측면에 우뚝 선 십자가는 꿇어앉은 연약한 인간을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 서있다. 그래서인가 바라간은 어떤 방문자에게 이 건물은 동쪽에서 햇빛이 들어오는 아침에 가서 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이 장면은 일생토록 잊을 수 없는 전율과 감동의 순간이었다.

성당 뒤편 위의 노란 격자를 통해서도 햇빛이 들어온다. 햇빛은 몇 번 걸러서 들어오기 때문에 참으로 은은하다. 마치 빛이 아름다운 성가를 노래하여, 소리가 내부 공간을 에워싸듯이 그렇게 에워싼다.

제대의 왼쪽 금빛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러들어 오는 빛이 십자가의 그림자를 떨어뜨리면서 정면의 빨간 벽과 금박으로 된 3장의 패널에 비친다. 누구에게나 비추는 저 흔한, 그러나 가장 귀한 빛으로 가득 차있는 이 공간은 작은 것과 평범한 것 속에 축약되어 있다. 교회건축의 본래 모습이 여기에 있다.


성당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

저 유명한 르 코르뷔제의 롱샹 성당은 그 아름다운 곡면의 형체가 공간을 메우고, 눈부신 빛이 마음을 감동시킨다. 눈은 저 감동의 장면을 향해 이곳저곳을 살피게 된다. 그러나 이에 비하면, 바라간의 카푸친 수녀원 성당은 작지만 빛을 반사하거나 벽과 바닥을 비추며 그림자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빛은 거친 벽면 재료 속에 스며들어가 있다. 다만 제단의 감실을 에워싸는 금빛의 패널만이 성체의 존귀함을 드러낼 뿐이다.

제단은 소박하고 벽은 거칠지만 모든 것이 겸손하다. 이 바라간의 성당은 형체나 현란한 빛을 드러내지 않고, 기도하는 자의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어와 있다. 눈은 성체에만 집중되고, 마음은 거룩한 하느님께 수렴한다. 이래서 바라간이 설계한 카푸친 수녀원 성당은 탁월한 종교건축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이 성당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이다. 이 성당은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이루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에워싸고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고, 모든 것을 신체에 호소하고 있었다.

더구나 여기에 사용한 재료는 평범하다. 회반죽으로 칠한 콘크리트 벽, 나무 바닥과 무릎틀, 단순한 격자 세공. 특히 무릎틀의 나무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두껍고 투박하여, 전혀 디자인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앉으면 편하다.

돌이 깔린 중정이나 마루 등도 모두 값싼 재료들이다. 이렇게 이 성당에 사용된 재료는 너무나도 평범하다. 이 겸손한 재료들이 공간 전체에 단아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빛’ 때문이다.

이 재료들이 각자 제자리에 놓이고, 하늘에서 비추는 빛을 만날 때, 재료는 빛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전해주고, 바닥은 조용히 빛나며 기도하는 이를 안아주고, 공간 전체를 누르스름한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빛이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흔하고 작은 것 안에 함께하시며, 침묵 속에서 사람에게 말을 건네신다.

나는 같이 갔던 몇몇 사람의 발자국 소리, 기침 소리가 저 멀리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이 작은 성당에 한참 앉아있었다. 그리고 앞을 응시하였다. 그러기를 한 30분. 그러자 무어라고 할까, 공간은 멍멍한 느낌이 들고 거리감도 없으며 오직 빛으로만 자신을 나타내는 평범한 재료들이 더 큰 하나로 합쳐짐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나는 이 성당을 통하여 건축물이라는 아주 작은 피조물 속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지를 깊이 느낄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마치 평범한 우리를 재료로 삼아 더 좋은 일에 쓰시려는 듯이. 그래서 ‘카푸치나스 사크라멘타리아스’라는 수녀원의 이 작은 성당은 내 건축의 원점이다.

김광현 안드레아 - 건축가. 서울대교구 반포본당 교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전주교구 천호성지 내 천호부활성당과 성바오로딸수도회 사도의 모후 집 등을 설계하였다.

[경향잡지, 201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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