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6-08-11 ㅣ No.106017

전화를 하기보다는 문자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자 때문에 생기는 일도 간혹 있습니다. 엉뚱한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후회하지만 돌이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자를 보낼 때는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문자로 사목을 하는 신부님도 있습니다. 그날의 복음 말씀을 신자들에게 전하기도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짧은 기도를 하자는 문자를 보내기도 합니다. 저의 묵상 글도 인터넷을 통해서, 카톡을 통해서 다른 분들에게 전해진다고 들었습니다. 발 없는 글이 천리를 넘어서 세상을 돌고 있습니다.

 

함께 지내는 신부님께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해가 있었는지 서운한 감정을 담은 문자였습니다. 문자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만나서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벌어진 일을 훌훌 털어버리는 성격이 아니어서 하루가 괴로웠습니다. 마음은 몸을 이끄는 것인가 봅니다. 다행히 다음날 동료 신부님이 사과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해가 있었다고,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문자를 받고 나니, 마음에 있었던 먹구름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책을 읽어도, 기도를 해도, 식사를 해도 즐겁지 않았는데, 사과의 문자를 받으니 묵은 체증이 사라지듯이 시원했습니다. 용서는 잘못한 이를 위한 배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당사자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입니다. ‘아닙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저도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영어로 용서를 나타내는 말은 ‘Forgive’입니다. For위하여라는 전치사이고, Give주다.’라는 동사입니다. 용서는 위하여 준다.’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목적어는 없습니다. 우리는 목적어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첫째, 나를 위하여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용서해야하는 실질적인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가 가득차면 내가 힘들고 너무 괴롭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있는 화병도 어쩌면 용서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용서하지 않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둘째, 상대방을 위해서 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수오지심이 있습니다. 이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입니다. 용서 받지 못한 사람도 가슴에 이 맺히기 마련입니다. 많은 것을 가졌어도, 삶이 풍족해져도 자신의 잘못 때문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백성사는 이런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갖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주는 것입니다.

 

셋째, 하느님을 위해서 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잘못을 해도 뉘우치면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면 하느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우리가 범한 더 큰 잘못도 기쁜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용서를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루가복음 15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돌아온 아들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용서해 주었고, 아들을 위해 잔치를 마련하였습니다. 복음은 돌아온 동생을 용서하시는 아버지에게 불평하는 큰 아들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자기에게 잘못한 것도 아닌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권한인 용서에 대해서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불만을 이야기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자비는 하느님의 몫이고, 정의는 인간의 몫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질서는 정의가 바로서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먼저 자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사랑이, 용서가, 자비가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용서하지 못해서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받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표어가 있었습니다. ‘자수하여 광명 찾자!’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용서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911 5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