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30일 (화)
(백) 부활 제7주간 화요일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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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하시는 예수님의 기도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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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1-11 ㅣ No.109312


 

 

 

온몸으로 하시는 예수님의 기도

 

- 윤경재 요셉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 유적만 남은 카파르나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어부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고, 잡은 물고기를 보관 가공하던 집이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일부 벽이 남아있는 유다인 회당 터가 아직도 멋진 자태를 보이며 서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집터 위에 지은 성당에서 두꺼운 유리 아래 칸칸이 나누어진 집터를 손가락으로 집어보며 이천년 전에 여기서 머무셨을 예수님의 숨결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 저쪽 방에 열병을 앓았던 베드로의 장모가 누워있었겠구나. 이 방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식사를 하시던 곳일까? 깨끗하게 열병에서 치유된 베드로의 장모가 신이 나서 예수님을 대접하는 정경이 눈에 선했습니다. 눈을 감고 묵상에 빠져 봅니다.

 

베드로의 집 앞 마당에는 안식일 낮에 회당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주시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웃의 눈을 피해 잔뜩 몰려들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각 집안에 한두 명쯤은 병든 환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악령에 빠져 집안을 풍비박산 내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유다 사회에서는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셔서 악령 들게 됐다고 손가락질을 당했기에 차마 널리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환자가 집안에 있다는 사실조차 그동안 숨기고 살아왔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비용도 만만찮게 들었습니다. 그닥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공짜로 치료해주고 손대시면 낫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둔 밤을 빛으로 환히 밝히시는 예수님의 능력은 바로 하느님 아빠와 일치하는 데서 왔습니다. 매일 새벽 동트기 전부터 예수께서는 외딴곳에 나가 하느님 아빠와 하나 되는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복음서는 그 모습을 기도하셨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솔직히 고백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모습은 실상 우리의 기도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라는 용어로 뭉뚱그려 잘못 받아들이면 자칫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의 모습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할 위험성이 생깁니다. 차원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국가고시를 앞둔 김 모라는 학생이 공부보다 하느님께 여러 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번 고시에는 꼭 합격시켜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언제 주님께 이런 부탁 기도한 적이 있나요?’ 이와 달리 수 년 동안 밤낮으로 고시 준비를 철저히 한 이 모라는 학생은 아주 간략하게 실수하지 않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어느 학생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입으로만 간절히 매달린 학생보다 시간을 바쳐 자신의 지력과 온몸을 써가며 준비한 학생의 기도를 더 잘 받아들이시지 않을까요?

 

이처럼 온몸의 기도란 시간과 의지와 행동이 일체가 되는 기도를 말합니다. 입으로만 하는 기도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온몸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굳이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온몸으로 복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침묵의 기도를 바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하나 되어서 내 생각, 내 말, 내 행동 하나를 아버지의 뜻대로, 양심이 올바르다고 시키는 대로 그냥 해버리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아버지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렇게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꼭 손해 볼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욕심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의심 없이 일을 실행하지 못하고 꼭 조건이 걸립니다. 기도에도 주고받는 일처럼 꼭 계산이 개입됩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마태 6,3)

 

이 말씀은 자비를 베풀 때 아예 계산을 떠올리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나아가 자비를 베풀었더라도 자신이 무엇인가 했다는 마음의 뿌듯함 마저 남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자비를 베풀고 자신이 베푼 것이 아니라 참나가 베풀었다고 공을 돌리는 것을 회향(廻向)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자신의 돈을 쓰고 노력을 기울였어도 자기가 한 게 아니라 내안의 참나가 한 거라 생각하는 것이 회향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무엇인가 했다는 의식이 없어야 참된 기도입니다. 그냥 아버지 안에 들어가 일치를 이루는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마음의 뿌듯함마저도 없애야 하며 그런 것을 모두 찌꺼기라고 생각하고 걸러내야 예수님처럼 하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이루어 질 것이라 알고 그냥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물며 무엇을 요청하거나 바라기를 넘어서 거래를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기도일 뿐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는 기도는 평생을 두고 해야 되는 것이니 잠시 필요에 따라 바치는 우리의 기도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시간과 의지와 행동이 일체가 되는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내안의 성령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돌려 놓으십니다. 우울하지 않게, 고독하지 않게, 허무하지 않게 회복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옳은 길로 가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대로 안 하면 후회할 것이라고 신호를 보내줍니다. 이 신호대로 움직이면 우리는 계획을 세울 필요조차 없어집니다. 그대로 하면 될 뿐입니다.

 

베드로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스승 예수님의 행동을 단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모두 닮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는 우리도 예수님의 자취를 통해 예수님의 행동을 낯낯이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온몸으로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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