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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뻣뻣한 에고를 죽이는 소금절임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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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2-23 ㅣ No.110285


 

뻣뻣한 에고를 죽이는 소금절임

 

- 윤경재 요셉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9,49~50)

 

 

 

소금은 인간의 체액과 혈액의 성분 중 0.9% 농도를 유지하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무기성분이 됩니다. 세포의 삼투압과 전해질 농도를 유지하는데 필수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일정량을 섭취해야 대사활동을 원활히 하며 체온도 유지하고 기운을 순환시킵니다. 염분이 부족하면 근육이 경직되고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됩니다. 심한 운동 뒤에 염분을 섭취하는 이유도 근육을 풀어주기 때문입니다.

 

해독, 살균작용도 있어 음식물이 부패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또 음식에 소금의 짠맛이 부족하면 음식 맛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빵 반죽할 때 넣은 소금은 이스트가 알맞게 발효하게 하고 밀 단백질인 글루텐을 강화시켜 쫄깃하게 만듭니다. 숙성시간을 알맞게 유지시켜줍니다. 빵 고유의 풍미를 더해줍니다.

 

소금의 역할 가운데 제일 중요한 기능은 절임입니다. 절임은 음식재료의 힘을 죽이고 뻣뻣함을 빼 줍니다. 김치를 담글 때 소금을 뿌리면 뻣뻣한 배추의 숨을 죽여 부드럽게 만들고, 배추가 양념으로 발효할 시간을 벌어줍니다. 절임 음식은 오래 보관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절이면 자신을 지키려는 에고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소금과 만나는 순간, 에고는 녹기 시작합니다. 그걸 통해 자신이 열립니다. 그 틈으로 소금이 더욱 스며듭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합당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과 분리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과 어우러져야 하며 그 속에서 더욱 더 빛을 발하며 맛을 내야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그들이 지닌 인간성의 본질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제 에고의 뻣뻣함을 죽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금 절임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전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물론 불륜을 저지르는 이 세상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들, 그리고 강도들이나 우상 숭배자들과 전혀 상종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아예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1고린5,10)

 

춘추시대 노나라 재판관(옥관)이었던 유하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더러운 임금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작은 벼슬이라고 하찮게 여기지도 않았으며 관직에 나아가면 능력껏 소신대로 이를 처리해 나갔습니다. 이런 사람이기에 임금에게 버림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았고 자신의 가난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종종 나는 나, 너는 너다, 네가 비록 내 곁에서 벌거벗고 있다고 한들 자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곤 했다고 맹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그에게 실제로 닥쳤습니다. “유하혜가 어느 때 먼 길을 다녀오느라 늦어서 성문 밖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갑자기 한 여자가 와서 잘 곳이 없으니 같이 자게 해달라고 했다. 유하혜는 얼어 죽을 것 같은 그 여인을 품에 안고 옷으로 덮어주었다. 새벽에 이르기까지 난잡하지 않았다.”라고 그의 평전은 전합니다. 그들 사이에 모종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벼슬길에 올랐는데 높은 지위에 앉았다고 즐거워하는 법이 없었고 낮은 지위에 앉았다 해서 원망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가 재판관직에서 옳은 말만하다가 세 번씩이나 면직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왜 다른 나라로 떠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도를 곧게해서 임금을 섬긴다면 어느 나라에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겠소? 하고 반문하며 자신의 행동을 지켰습니다. 그는 늘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한 결 같은 道를 베풀었습니다. 어떤 상황에 닥쳤어도 유하혜는 화합과 조화를 이끌며 자신의 철학인 道를 지켜냈습니다. 道를 지키는 것은 에고의 고집이 아닙니다. 오히려 에고가 무너져야 비로소 드러나는 밝은 덕입니다. 大學에서는 이러한 것을 하늘이 주신 明德’을 밝히는 일이라 했습니다.  明德’은 인간의 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논어 미자편에서 자신을 지키면서도 타인에게 어짐을 베푸는 유하혜의 태도를 높이 평가했으며, 맹자는 그를  조화를 이룬 성인(和聖)에 속한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에고의 욕망에 따르지 않고 자기의 에 충실한 것을 높이 산 것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절인 사람은 혼과 육인 에고가 사라져 나와 남의 경계가 희미해집니다. 결국 나와 남이 하나로 합치는 순간이 다가옵니다. 나를 주장하거나 또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이롭게 해 줄 방법을 찾아냅니다. 자신에게도 이롭고 남도 유익하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외통수 길을 찾아내어 뚜벅뚜벅 걸을 수 있게 만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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