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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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29 -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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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3-29 ㅣ No.111086




2017
03 29 () 가해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이사야서 49,8-15
요한복음 5,17-30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


예수님의 특성은 자신의 뜻이 곧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과 아버지는 하나라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준행하러 이 세상에 온 것이라 이야기하시고 내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고도 하신다. 사실 예수님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늘 최선을 다하셨고 우리에게도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신다.

십자가상의 수난을 앞두고 괴로워하시면서도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하지만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하고 애끓는 기도를 바치기도 하신다.

실상 예수님의 생애는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삶이었다고 한 마디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기에 늘 자신있게 자신은 아버지와 하나라고 말씀하셨는데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세인들은 생각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느님이요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명시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다. 다만 자신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할 뿐이라고 하셨고 그렇다면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거나 다름없지 않느냐고 반문하셨을 뿐이고 자신을 언제나 사람의 아들로 제시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자신이 곧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아들이라 주장했다고 몰아부친다. 사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완벽하게 알아듣고 실천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체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예수님과 더불어 나는 아버지와 하나이고 그러기에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내 뜻이 아버지의 뜻과 늘 일치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뜻을 명쾌하게 꿰뚫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내가 아버지와 하나가 됨을 강력하게 느낄 수 있다. 아버지는 내 안에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함께 계신 하느님(임마누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는 내 뜻이 곧 아버지의 뜻이라고 착각한다. 아버지의 뜻이 내 뜻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나의 생각, 나의 뜻이 곧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기는 데서부터 오류가 발생한다.

전자의 경우, 즉 아버지의 뜻이 내 뜻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나는 늘 내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에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가 될 것이고, 후자의 경우, 즉 내 뜻이 곧 아버지의 뜻이라는 이야기는 하느님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린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이렇게 되면 바리사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기에 독성죄에 해당할 지도 모른다.

, 나는 아버지의 뜻에 늘 귀를 기울이면서 내 뜻을 포기함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여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반대로 아버지의 뜻을 내 뜻으로 격하시켜 하느님을 내 수준으로 끌어 내리면서 하느님을 모독하는 독성죄의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바리사이들의 말이 이렇게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예수님을 두고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두고서 하는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리라.

~ 그렇게 깊은 뜻이.....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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