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5일 (토)
(녹)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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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미워할지라도 그분의 길이기에 / 부활 제5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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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7-05-20 ㅣ No.11212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이 너희보다 나를 미워한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너희를 사랑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를 뽑았기에 너희를 미워한다. 그들이 나를 박해하기에 너희도 박해한다. 내 말을 지키면 너희 말도 지키리라.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일을 저지른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에.”(요한 15,18-21 참조)’

 

속도로 경쟁하는 세상이다. 빠를수록 박수 받는다. 어느 새 빠른 건 좋고 느린 건 나쁜 게 되었다. 그러나 빠른 건 그저 빠른 것일 뿐, 좋고 나쁜 게 아니다. 느린 것 역시 그저 느린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등은 영웅이고 이 삼등은 시큰둥이다. 금메달에만 국가가 연주된다. 글자 그대로 죽기 아니면 살기이다. 이것이 인생이리라. 사실 빨리 뛰면 빨리 망가지리라. 삶에도 제동을 위해 한번쯤 멈추어 돌아 볼 여유를 갖자.

 

우리가 종교를 갖는 이유가 현실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란다. 종교는 하나의 진통제 같은 역할이다. 그러나 믿는 이에게는 이 주장은 그릇되다. “내가 너희를 뽑았기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면 세상의 미움을 받는다나. 그렇다면 세상은 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미워할까? 그분 가르침이 세상 것과 다르고 그릇된 가치관과는 결코 타협될 수 없기에? 그래서 그분 가르침이 되레 불편하게 만든단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세상의 가치로 미움을 받는가, 아니면 적당히 얼버무리며 타협하여 편히 사는가?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며 권모술수와 권력층의 감추고 싶은 부분을 거리낌 없이 폭로했다. 이것이 당시 지도층을 불편하게 했단다. 그리하여 그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독약을 마셔야 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추구하며 산다. 다만 현대인들은 행복에 대한 권리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시대보다도 분명히 자각한다. 그러기에 행복하지 못하면 상실감을 가진다. '죽으면 살리라!'라는 역설을 몸소 체험하는 신앙인들은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있다. 행복을 목말라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만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마치 갈증을 달래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이리라.

 

살면서 불편과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자기 길을 가는 이는 참 행복하다. 그렇지만 종종 비판과 반대가 강해 어려움을 겪는다. 그게 종교적 신념이라면 더 큰 저항이 될 게다. 종교는 절대적 가치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기에. 예수님을 믿기에 신앙을 선포하다보면 때로는 믿지 않는 이들의 반대와 비방에 맞서기도 한다. 때로 자신의 뜻과 다른 일을 겪을 때도 결코 좌절하지 말자. 그것이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이라며 나아가자. 이는 자신이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 없이는 생길 수 없다.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한 일만 생겨야 하는데, 여전히 왜 고통이 많은지 묻는다. 믿음은 언제나 역설적이다. 믿음은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희망에 저버리는 고통을 견디는 능력을 준다. 그래서 때로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세상살이에 걸림돌이더라도 그 길이 그분께서 가신 길임을 믿기에 가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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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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