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5일 (일)
(백)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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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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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7-06-09 ㅣ No.112499

전주교구 서학동 성당엘 다녀왔습니다. 전주교구 성소국에서 하루 피정을 준비하였고, 제게 강의를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향이 전주이고, 친지들이 전주에 많이 사시기 때문에 가는 길이 즐거웠습니다. 피정에 함께 하신 분들도 고향이 전주라고 말씀드리니 반갑게 대해 주셨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포근한 것 같습니다. 피곤할 때면 가서 쉴 수 있는 곳, 비록 잘못을 했을 지라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받아 주는 곳이 고향인 것 같습니다. 피정 중에 비가 내렸습니다. 타는 가뭄에 목이 마른 고향에 하느님께서 단비를 선물로 주신 것 같아서 더욱 기뻤습니다. 피정을 마치고 유아세례를 받았던 전동 성당도 보았고, 남부시장에서 맛있는 순대도 먹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야할 하느님 나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가신 신앙의 선조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실 것 같습니다. 우리의 수고함을 격려해 주실 것이고, 우리의 아픔을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의 뒷모습은 그래서 당당한 것입니다.

 

예전에 어른들이 다투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툼의 원인과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제 귀에 들렸던 말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너 몇 살이냐?’ 그러자 조금 젊은 분이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나이가 벼슬입니까?’ 어른을 잘 섬기고,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시비를 가리는 기준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가끔 그런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구교우 집안이라는 말, 세례를 받은 연도가 빠르다는 말, 교육을 받은 기수가 빠르다는 말, 성직자 집안 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분들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은 길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느님께 얼마나 충실한가를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린 다윗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린 다니엘을 선택하셔서 수산나의 무죄함을 밝혀 주셨습니다.

 

우리는 물건을 사면 그 물건이 어느 나라, 어느 회사의 제품인지 살펴봅니다. 미국, 일본, 독일에서 만든 제품들은 튼튼하고, 예쁘고, 실용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제품들도 인정받고 있으며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어느 나라 어느 회사에서 만들었는지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의 성능과 품질입니다.

 

진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배움의 깊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직책을 가리지 않습니다. 진리는 어느 곳에 있어도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진리 앞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은 교만함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겉모습만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구약에서 이야기하는 다윗도, 구약의 권위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보다 더 권위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하느님과 직접 소통하시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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