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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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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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7-09-04 ㅣ No.114442

불가에서는 인드라망이라는 말을 합니다. “인드라망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보는 세상에 대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드라라는 그물은 한 없이 넓고 그 그물의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는데, 그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주는 관계라고 합니다. 그 구슬들은 서로를 비출 뿐만 아니라 그물로서 서로 연결되어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 연결되어있으며 서로 비추고 있는 밀접한 관계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세상과 인간과의 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답니다.”

 

과학에서는 양자역학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는 인드라망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미시세계에서는 관찰자의 시선에 따라서 물질이 변한다고 합니다. 관찰자의 마음에 따라서 새로운 물질이 생기기도 하고, 관찰자의 마음에 따라서 있던 물질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거시세계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양자역학은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는 빛의 현상을 설명하면서 발전하였습니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더 많은 차원의 세상이 있을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죽음 이후의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죽고, 사라지는 것 같지만 우리는 또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가장 쓸쓸하고 허망할 것 같은 죽음도 의미가 있고, 박해를 받아서 순교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다가 죽은 것도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 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려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신앙은 3차원적인 삶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몸의 각 지체는 몸을 위해서 기꺼이 가진 것을 나누고, 희생하고, 온전한 몸이 될 수 있도록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그 차원을 이웃과 세상 그리고 우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 차원을 삶과 죽음을 넘어서 부활의 차원으로 넓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런 차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삶은 빠른 말이 문틈으로 스쳐가는 것 같다고 합니다. 벼슬은 하룻밤 묵는 여관이요, 명예는 이 사람 저 사람 돌려가며 쓰는 감투와 같다고 합니다. 바위에 새긴 이름도 언젠가는 세월의 파도에 씻겨 내려갈 것입니다. 지나가는 세상을 붙들려고 하는 것은 물 위에 이름을 쓰는 것과 같이 부질없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우리는 그 보이는 것에 연연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바위에 글을 적지 않았습니다. 큰 감투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우리는 사랑하고, 그분의 삶과 말씀을 가슴에 새기려합니다. 그분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해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신앙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영원을 희망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따라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말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利己主義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되고 利他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것, 갇힌 이들을 풀어주는 것, 묶인 이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러한 삶이 우리를 현재의 삶을 살지만 영원한 세계에로 이끌어 주리라 말씀을 하십니다. 가을이 온다고 다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닙니다. 여름에 뜨거운 땀을 흘린 사람들이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을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결실은 하느님을 믿고, 신앙 안에서 충실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몫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묵묵히 따라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질이라는 신이 득세하는 세상에 가난한 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묶인 이들을 풀어주는 자유와 해방의 신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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