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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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욱 신부의 {내맡긴 영혼은} 하느님의일과사람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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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다 [pharm8891] 쪽지 캡슐

2017-09-22 ㅣ No.114896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 (2013, 03, 13)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냥 쉽게 생각하면 하느님의 일이란 '하느님을 위한 일'이며,
사람의 일이란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일의 목적이 '하느님'께 있으면 하느님의 일이 되고,
일의 목적이 '인간'에게 있으면 인간의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이 성당이나 신앙 단체 안에서 하는 일이
다 하느님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신앙인들이 하는 일이 하느님의 일인가 사람의 일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과연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제가 지금 하느님의 일을 크게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부가 하는 일이라고 해서 다 하느님의 일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신부가 하는 일이라고, 아니 교회가 하는 일이라고
다 하느님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교회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했던 일 중에 하느님의 일이 아니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래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께서는
지난 2천 년 동안의 교회의 큰 잘못에 대하여 세상을 향해 고백을 하셨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지금 벌이고 있는 일들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무엇보다
하느님의 일이 되기 위해서는 이 일을 통하여 오게 되는 모든 공(功)과
모든 영광을 고스란히 하느님께 되돌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 일본어로 번역 중에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어로 책자가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내맡김의 화살기도>가 프랑스판(10개 국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음반과 일본판(3개 국어)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음반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적과 음반들이 만들어지면서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이
세상에 크게 알려지게 되더라도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서 그가
'한 일'이 어떻게 크게 잘 되었고 그래서 누구누구는 어떻게 해야 되고
등등, 그 어떤 공로든 칭찬이든 영광이든 서로 함께 나누어 먹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모든 것을 몽땅 고스란히
하느님께 되돌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입으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라고 아니,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하였습니다."라고
외쳐야 할 것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러한 말씀을 미리 드리는 것은 모든 중요한 일,
특히 하느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나는 일 앞에는 꼭 마귀의 훼방이 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나는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 도상에서
제자들이 보여주었던 추태, '자리다툼'이 바로 그 좋은 예일 것입니다.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7)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전부터
'공(功)나눔'을 하였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功나눔은 마치 십자가에서 숨지신 예수님의 속옷으로
제비를 뽑았던 로마 군인들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일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못한 모습일 것입니다.


"그들이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습니다."(요한 19,24)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서운함" 이 없습니다.
일의 목적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느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공로를 적게 받아도, 아니 전혀 받지 못해도 전혀 서운함이 없으며
오히려 받은 공로마저 하느님께 몽땅 되돌려 드립니다.


서운한 대우를 받아도 그저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리고(루카 10,11)
돌아설(아님말구) 뿐입니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아니 제가 일본에 오기 전에도 또 앞으로도
진심으로 서운함을 느껴보지 못했고, 서운함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내맡김의 초보 시절에는 서운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지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야말로 정말 모든 것 다 버리고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신부가 하는 일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왕창왕창 쏟아 부어 주시고
내가 하려는 일은 정말 거룩한 하느님의 일인데 파리만 날리고..."


정말 하느님께 섭섭해 하고 서운해 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저의 그런 마음까지 당신께 내맡기고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도록 저를 이끌어주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만을 뜨겁게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역시,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해 드리게 되니,
저의 모든 일을 당신이 직접 다 해 주심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서운함을 느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운하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뜻" 이며,
완전 충만 자체이신 하느님을 찾아 얻지 못했다는 완벽한 증거입니다.


하느님께 100%를 내맡긴 사람은 모든 일에 절대 서운함을 모릅니다.
발의 먼지만 그저 툭, 툭 털어버릴 뿐입니다.


충만 자체이신 하느님을 찾아 얻은 사람은
어떤 일이나 사람에게서도 서운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충만 자체이신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http://cafe.daum.net/likeamaria/


(소리로 듣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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