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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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8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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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8-06-02 ㅣ No.120860

 

군대 있을 때입니다. 문서를 취급하기 위해서는 비밀 취급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3급 비밀 취급 인가를 받았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 문서는 3급 이하이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문서를 보기 위해서는 더 높은 비밀 취급 인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교구에서도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름과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제가 볼 수 있는 화면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화면에는 제가 맡은 업무와 제가 결재 할 수 있는 범위가 있습니다. 인사이동이 되어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저의 이름과 비밀번호로는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공문을 작성할 때도 기준이 있습니다. 국장 신부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총대리 주교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교구장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제 이름으로 해도 되는 것을 교구장님의 이름으로 공문을 발송하면 격이 맞지 않아서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 교구장님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것을 제 이름으로 공문을 발송하면 효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구에서는 문서 발송의 기준을 마련하였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꼭 보는 공문이 있었습니다. 사무처, 관리국, 사목국에서 보내는 공문입니다. 사무처의 공문은 인사와 교구 행정에 대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관리국의 공문은 재정에 대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사목국의 공문은 본당에서 실천해야 할 것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공문들은 눈여겨보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와 직접 관련이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권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권한은 능력, 재력, 권력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조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재력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까?”

 

성서는 예수님의 권한을 4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은 유대인들의 종교관습에 의하면 죄를 대신하여 희생하는 제물입니다. 그 유래는 모세의 출애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문지방에는 양의 피를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희생된 양의 피는 하느님의 재앙을 막아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희생된 양의 피를 보시고 건너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스카입니다. 성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이 우리 인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신 어린양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린양은 순결해야 하고,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흠이 없고 순결하신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고난받는 야훼의 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에 걸친 유배 생활을 하였습니다. 유배 생활은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낯선 곳에서 힘들게 벌어야 했고, 핍박과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전에 북간도로 떠나야 했던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난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유배 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참된 예배를 드릴 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유배가 끝나면 사막에 샘이 솟아나고,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뛰놀고, 사자와 어린이가 함께 춤을 출 것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고난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고난과 십자가는 반드시 하느님께서 보상을 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세 번째는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처럼 사람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복음서를 보면 사람의 아들이란 표현을 자주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란 무슨 뜻인가요? 마지막 날에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모든 이를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시고, 참된 생명의 길을 알려 주시는 분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유한한 틀을 깨시는 분이고, 모든 것을 정리해 주시는 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요한복음 사가가 이야기하였듯이 예수님은 말씀이셨습니다.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고, 말씀은 하느님이셨고,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예수님에 대해서 아름답게 찬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은 맨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생겨난 것치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씀이 참된 빛이셨으니 그 빛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엄청난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전해주는 예수님의 4가지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은 한없이 약하고, 순결하신 어린양이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되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겸손함과 정결함, 순수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분은 모든 고난과 고통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었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배워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한 구원자이시고, 그분이 걸어가신 길이 생명의 길이였으며, 그분의 권위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주어지고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또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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