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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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간 화요일]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루카 8,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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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9-24 ㅣ No.132723

 

[연중 제25주간 화요일]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루카 8,19-21)


돌아온 유배자들은 하느님의 집 건축 공사를 마치고 봉헌식을 올리고는 파스카 축제를 지낸다. (에즈  6,7-8.12ㄴ.14-20)
그 무렵 다리우스 임금은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 관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7 “하느님의 집 공사가 계속되게 하여라. 유다인들의 지방관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 하느님의 집을 제자리에 다시 짓게 하여라.
8 이제 그 하느님의 집을 다시 짓도록  그대들이 유다인들의 원로들을 도와서 해야 할 일에 관하여, 내가 이렇게 명령을 내린다. 왕실 재산 곧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에서 받는 조공에서, 지체하지 말고 그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비용을 내어 주어라.
12 나 다리우스가 명령을 내리니 어김없이 시행하여라.”
14 유다의 원로들은 하까이 예언자와 이또의 아들 즈카르야가 선포하는  예언에 힘입어 건축 공사를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명령과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와 다리우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명령에 따라 건축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15 그리하여 이 집이 완공된 것은  다리우스 임금의 통치 제육년 아다르 달 초사흗날이었다.
16 이스라엘 자손들, 곧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은 기뻐하며 하느님의 집 봉헌식을 올렸다.
17 이 하느님의 집 봉헌식에는  황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양 사백 마리를 바치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물로 이스라엘의 지파 수에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다.
18 그런 다음 모세의 책에 쓰인 대로, 사제들을 저마다 번별로 세우고 레위인들을 저마다 조별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였다.
19 돌아온 유배자들은 첫째 달 열나흗날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20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일제히 자신을 정결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정결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돌아온 모든 유배자와 동료 사제들과 자기들이 먹을 파스카 제물을 잡았다.


화답송 시편 122(121),1-2.3-4ㄱㄴ.4ㄷㄹ-5(◎ 1 참조)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 “주님의 집에 가자!”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당신 어머니와 당신 형제들이라고 하신다. (루카 8,19-21)
그때에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제1독서 (에즈6,7-8.12ㄴ.14-20) 

 

"다리우스 임금의 통치 제육년 아다르 달"  (15)

 

다리우스 임금은 B.C.522-486년에 페르시아 임금으로 집권하였다.

따라서 다리우스 임금의 통치 제육년은 B.C.516년이 된다.

 

성전 재건 공사는 B.C.536년에 시작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인해 곧 중단되었다. 그후 16년이 지나 B.C.520년에 성전 재건이 재개되었고, 4년 만인 B.C.516년에 완공되었다.

 

하까이 예언자와 즈카르야 예언자의 독려에 의해 지어진 제2 예루살렘 성전은 첫번째 성전인 솔로몬 성전이 완공된 B.C.959년으로부터 440 여년 후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제2성전은 B.C.19년 헤로데 임금에 의하여 헤로데 성전이 세워지기까지 500 여년간 존속하였다.

 

이처럼 성전이 파괴된 지 무려 70년 만에 재건된 사실은 바빌론 포로 생활 70년 후에 이스라엘을 회복케 하리라는 예언자의 예언이(예레29,10) 이루어져, 선민 공동체의 구심점인 성전 재건으로 이스라엘의 신정(神政)공동체가 회복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에즈라기 저자는 이 역사적인 날을 상세히 밝혔다. 아다르 달은 유다 종교력(월력) 기준으로 보면 12월이고, 양력 기준으로는 3월이다.


"이스라엘 자손들, 곧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은   기뻐하며 하느님의 집 봉헌식을 올렸다."   (16)

 

에즈라기 6장 13-15절은 다리우스 임금의 조서가 내려진 이후, 성전 재건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B.C.516년에 마침내 완공되었음을 보도하였다.

이제 이어지는 에즈라기 6장 16-18절에는 역사적인 성전 봉헌식이 거행된 사실을 보도한다.

 

그 가운데서 에즈라기 6장 16절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 주체를 밝힌다.

에즈라기 6장 16절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거론되는데, 새 성경에는 서두에 나오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말미에 나오는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이 서로 다른 집단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문에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은 동격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에 해당하는 '베네 이스라엘'(bene israel; the people of Israel; the children of Israel)과 이어지는 부분에 접속사 '와우'(wau)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즈라기 6장 16절의 상반절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이스라엘 자손들, 즉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나머지 돌아온 유배자들의 자손들이'가 된다.

 

에즈라기 저자가 성전 재건을 마치고 감사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아온 사람들의 계층을 사제, 레위인, 기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자의 자손으로 세부적으로 언급하면서,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베네 이스라엘)이라고 통합하여 언급한 이유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백성인 선민 이스라엘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 하느님께서 계약의 후계자 야곱에게 주신 새 이름이다(창세32,28).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이란 명칭은 하느님과 계약 관계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표현이다.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나와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계약을 맺고(탈출19,1), 약속의 땅에 거주하게 되었다(여호12,6).

 

이후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느님을 거스려 끊임없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2열왕17,7)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났지만, 이제 하느님의 은혜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와 하느님의 백성의 상징인 성전을 재건하고, 하느님께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계약적 호칭을 다시 받게 된 것이다(예레50,4).

 

한편 '유배자'에 해당하는 '갈루타'(gallutha) '포로'(the captivity), '사로 잡혔던 자'라는 뜻보다는 '추방된 자'(the exiles)라는 뜻에 더 가깝다.

이것은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다'라는 개념보다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다'라는 측면이 더 강조된 표현이다.

 

또한 '나머지', '기타'에 해당하는 '쉐아르'(shear) '남은 자'(the rest)라는 뜻이다.

따라서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에 해당하는 '쉐아르 뻬네 갈루타'(shear bene gallutha)직역하면, '쫓겨난 자손의 남은 자'(the rest of the exiles)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자손'이란 표현과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이란 표현은 하느님의 계약이라는 주제 아래서 본다면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느님의 계약 아래 약속의 땅에서 보호받는 백성이란 의미이고,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쫓겨난 자손의 남은 자) 하느님께 불순종하여 하느님의 계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약속의 땅에서 추방된 백성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에즈라기 저자는 에즈라기 6장 16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표현과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이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불순종하여 가나안 땅에서 쫓겨났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용서하여 귀환시키시고,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게 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신실하심에 대해 강조하였다.

 

'사제들과 레위인들과'로 번역된 '카하나이야 웰레와예'(kahanaiya wellewaye; the priests and the Levities)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과 구별되어 별도로 언급된 것은, 그들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인 목적이 제2 예루살렘 성전의 완공 및 봉헌식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성전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 측면에서 에즈라기 저자는 사제들과 레위인들들의 직무와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들을 따로 언급한 것이다.


 과거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제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자신들의 막중한 책임을 도외시한 채, 제사를 통해 자신들의 개인적인 부를 쌓는 일에만 몰두했었다(2역대36,14; 애가4,13). 그 결과 하느님의 징벌이 내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성전은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히고 파괴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를 상기하면서 에즈라기 저자는 이제 하느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새로 건축된 성전에서는 그와 같은 부정한 일이 행해져서는 안됨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특별히 따로 언급했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봉헌식'이라고 번역된 '하눅카'(hanukka; the dedication)'헌신하다'라는 뜻의 동사 '하나크'(hanak)에서 유래하여 '하느님께 받은 것을 온전히 하느님께 되돌려 드림으로써, 그 모든것의 주권(절대권)이 하느님께 있음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 제2성전 기초의 일부가 남아 있는 예루살렘 서쪽벽은 나중에 헤로데가 개축하였고 기원후 70년  성전 파괴시에 로마 황제가 유일하게 남겨놓아 오늘날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 곳이다.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복음(루카8,19-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21)

 

루카 복음 8장 19~21절의 병행구절인 마태오 복음 12장 46~50절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형제들이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하고 계실 때 찾아온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찾아온 이유예수님의 가르침과 영적이 군중들에게 영향을 끼쳐 단순히 소문과 명성 때문에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께서 베에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마태12,22~32)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소문 때문에

걱정이 되어 찾아왔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회당에서 가르침을 하는 도중에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만나기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 라고 말하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마태12,49)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당신 구원 사업의 협력자로 불리움을 받은 제자들도 이러한 공적(公的)인 가르침 중에 사적(私的)인 육정(肉情)을 쓰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교육적인 차원에서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루카 복음 8장 21절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로 나오는 마태오 복음 12장 50절과 병행 구절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혈육적이고 혈연적인 관계보다도 영적인 관계가 더 중요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에 해당하는 '메테르 무 카이 아델포이 무'(meter mu kai adelphoi mu)에서 '형제들'에 해당하는 '아델포이'(adelphoi)의 단수는

'아델포스'(adelphos)이다.

 

여기 복음에 나오는 '형제'라는 뜻의 '아델포스'(adelphos)라는 희랍어 단어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사촌 형제들도 그렇게 불렀다.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형제, 자매들요셉 양부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고종 사촌들이나 마리아의 형제, 자매의 자녀들인 이종 사촌들이라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 친형제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에 자신의 어머니를 친형제들에게 맡기지, 왜 이종사촌인 제자에게 맡겼겠는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출산하기 전(前)이나 출산시(時), 그리고 출산 후(後)에도 평생동정(平生童貞)이시라는 교리 신덕 도리 이천년 동안 가르쳐오고 믿어온 가톨릭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대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부정하는  개신교 마리아에게는 예수님 외에도 여러 명의 아들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말씀 절대 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이렇게 성경적 무지로 오류을 범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대처주의를 성경을 근거로 해서 합리화시키려고 하니까 터무니 없는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듣고'에 해당하는 '아쿠온테스'(akuontes; hearing)의 원형은 '듣다', '복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쿠오'(akuo)인데, 이것은 자식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 권위의 대리자들인 부모에게 순종하듯이, 인간들의 삶을 다스리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권위이신 하느님께 대해 자녀로서의 순종은 당연한 도리요 의무라는 뉘앙스를 주는 말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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