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8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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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김영식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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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19-10-20 ㅣ No.133319

 

 

어제 갑작스럽게 문자를 받았다. 원로 신부님의 선종 소식이었다. 어제는 조카 결혼식이 부산에서 있어서 갈 수 없어 오늘 주일미사를 마치고 교구청에 신부님을 위해 연도를 하러 갔다. 가기 전까지 신부님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교구청에 들어서서 교구청 강당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제단에 놓여있는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을 보면서 드는 느낌은 젊은 신부님인 줄 알았다. 나중에 연도를 하고 미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신부님께서 젊으셨을 때의 사진인 것 같았다.

 

오늘 연도를 하면서 나의 머리는 조금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소위 말해 멀티태스킹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연도를 하면서 계와 응을 하는 사이의 막간의 틈을 이용해 영정 사진 속에 있는 신부님의 외적인 모습만을 보고 상념에 잠겨보았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젊은 신부님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멍청했다. 뻔히 오늘 본당 교중미사 전에 교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미리 잠시 봤을 때 원로사제라고 봤지만 거기까지는 상상을 하지 못했었다.

 

연도를 하는 중에는 젊은 신부님이신 줄 알고 마치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모습만이 떠올라 온갖 생각이 났던 건 사실이다. 근데 도중에 강기갑 전 국회의원님이 들어오시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그냥 외부인으로 오셔서 조문을 하고 가시려고 오신 줄 알았었다. 나 자신이 연도를 하는 시간에 드리는 미사는 신은근 신부님이 집전을 하셨다. 근 일 년만에 신부님을 뵈었다. 작년 이맘때에 신부님 본당에서 하루 피정을 하고 오늘 처음 뵈었던 것이다.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 대충 신부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걸 아니 강기갑 의원님이 왜 오신 줄 대충 미루어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미사 후에 조화를 보니 더불어 민주당 이해찬 대표님의 조화와 또 다른 분의 조화가 있어서 이 조화들도 왜 있는지 퍼즐이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또 다른 미사에서는 선종하신 신부님의 동창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셔서 신부님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돌아와서 좀 더 신부님에 대해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방금 실검에 신부님께서 나오셔서 보니 문 대통령님께서도 페이스북을 통해 애도를 표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실검에 오른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는 자세히 말씀을 드리기가 곤란하지만 오늘 신부님에 관한 이야기를 교구청에서 듣고 정말 가슴이 많이 아팠다.

 

영세를 받기 전에 이미 아마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은퇴를 하신 것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나온 사진은 노쇠한 모습의 사진이었다. 교구청에 있는 영정 사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사진이었다. 두 사진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라 또 한 번 가슴이 아팠다. 한 번도 뵙지는 못한 신부님이시지만 정말 두손 모아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싶다.

 

이젠 정말 천국에서 하느님과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말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오늘 연도를 하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물론 다른 신부님께서 선종하셨을 때도 연도를 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께서도 사제이기 이전에 하나의 우리와 같은 자연인에 속하기에 나약한 인간으로서 어떤 것을 하신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우리는 연도를 통해 하느님께 읍소를 하는 것이다. 난 읍소를 하면서 하느님께 마음속으로 말씀을 드렸다. 만약 방금 언급한 내용으로 인해서 잠시 동안이라도 천국에 갈 수 없는 결격사유가 된다면 그걸 유보해 주십사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내용을 하느님께 말한 근거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확실하게는 잘 모르지만 인터넷과 오늘 미사 강론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로 봤을 때 오랜 세월 신부님께서는 투병생활을 하신 것이었다. 난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2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거의 2년가량 투병하실 때 엄청나게 죽음에 대해 나 자신이 평생 죽음에 대해 생각할 것을 그때 다 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정말 죽음에 대해 많이 고뇌했었다.

 

그때 느낀 게 있었다. 바로 연옥에 대한 생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건 자연의 이치라 거스를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여기서 병과의 투병을 한번 생각해 보면 이건 분명 한 인간에게 고통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난 이 고통을 일면 이렇게 해석을 하고 싶다. 어찌 보면 그 고통은 이 세상에서 연옥에서 받게 될 고통을 대신 보속하는 개념으로 이해를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이렇게 추론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름 확실한 건 아니지만 연옥에 대한 교회 문헌에서 힌트를 얻어 이렇게 추론을 해보았었다.

 

만약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면 선종하신 신부님께서도 사제이기 이전에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범한 죄로 인해 연옥에서 보속해야 할 보속거리가 있다면 그걸 현세에서 신부님이 다 보속하신 걸로 한다면 완전히 하느님의 품에 계실 거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라도 생각을 해야만이 하나의 자연인인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을 위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욕망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 사제의 길을 간 신부님께서 한 세상 살아가신 거에 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는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 상상을 해봤던 것이다.

 

지금까지 거의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도를 많이 해봤지만 선종하신 신부님을 위해 연도를 할 때 느끼는 감회는 정말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후세가 없기 때문에 그 빈자리를 다른 신부님들께서 채워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도 확실하게 느끼는 사실이 하나 있다.

 

복음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우리는 신앙으로 맺으진 끈끈한 무언인가 정이 녹아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육신의 형제자매는 육적으로는 형제이지만 진정한 형제애는 느낄 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난 정말 육적으로는 피가 다르지만 같은 하느님을 바라보고 신앙으로 맺으진 형제가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형제의 의미가 더욱더 피부로 와 닿는다는 걸 고백하고 싶다. 이런 내용을 만약 나의 형제들이 알게 된다면 아마 분노할 것이다. 그래도 나의 진심은 그렇다.

 

여러 번 봤지만 먼저 선종하신 신부님을 위해 여러 신부님께서 선종하신 신부님의 육신 옆에서 동료 신부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드리면서 그분들은 과연 어떤 마음이실까를 많이 생각해봤다. 100 퍼센트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99 퍼센트는 정말 육적인 피를 나눈 형제에게서 느끼는 형제애보다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함께 나눈 신부님들이 더 진짜 선종하신 신부님의 진정한 형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주례하신 신부님 외에 예전에 본당 보좌신부님으로 계신 신부님의 얼굴을 보니 그 얼굴 표정에는 내가 생각하기엔 이런 표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한참 위인 선배 신부님이시지만 같은 사제의 길을 가신 선배 신부님으로서 후배 사제가 느끼는 슬픈 감정이 고스란히 얼굴에 묻어나는 모습을 보는 나의 가슴도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듯 몹시 아팠다.

 

정말 한 인간으로서 가슴이 짠하다. 육적으로는 피붙이 하나 남기지 못하고 가시는 삶을 사셨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르긴 몰라고 그에 대한 보상이라면 좀 이상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반드시 치러주실 거라고 믿고 싶다. 신부님, 부디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이제는 편안하고 영원한 안식에 드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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