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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 더 쉬우냐? (마르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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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 [rmskfk] 쪽지 캡슐

2019-10-22 ㅣ No.133341

어느 쪽이 더 쉬우냐?(마르 2,9)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르 2,5-11)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요?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평화방송 박기석 신부님의 강의 '복음의 시작 마르코가 전한 예수' 제11회 강의에서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가 강의 녹취록을 만들었는데 이 구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만 옮겨드리겠습니다.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마르 2,9)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그들이 속으로 자기를 비난하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비난에 있어서 다음의 방법으로 반박을 하세요. 이 반박은 여러분들이 좀 기억을 하셔야 됩니다. 

 

* 마르코 복음서의 특징 

⇒ 예수님께서 불일치의 상황에 답하기 보다 오히려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응수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논쟁을 펼치는 사람들,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바로 답변을 안 해요. 그들이 질문을 던질 때 그 질문에 답변을 하시지 않고 예수님이 다시 역으로 질문을 하셔서 답을 하신다는 거예요. 그들이 답하게끔. 그러니까 그런 장면이 계속해서 반복이 돼서 나옵니다. 지금 2장도 그렇지만 3장에 가서도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이렇게 역으로 질문을 하시고요. 

 

11장에 가서도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마르 11,30) 세례자 요한의 세례에 관한 권한에 대해서 질문을 할 때도 예수님이 답을 안 하시고 역으로 질문을 하십니다. 12장에서도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마르 12,37) 이렇게 곤란한 질문을 받으실 때, 양자택일의 질문을 받을 때, 역으로, 거꾸로 답을 해서 그들이 딜레마에 빠지게 하신다라는 거죠. 그런 방법을 여기서도 사용하고 계시는 겁니다.

 

즉, 예수님께서 당신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용서하는 권한이 당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증거들, 이제 또 다른 방법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방법과 함께 또 다른 방법을 하나 쓰시는데, 이 장면에서 이거를 제일 많이 질문을 하세요. 예수님이 사용하신 방법이 뭐냐 하면, 당시 유다인들의 어떤 사실에 대한 증명 법칙인데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에로'라고 하는 법칙이 있어요. 유다인들이 어떤 논쟁을 펼칠 때 큰것에서부터 작은 것에로라고 하는 원칙을 가지고 사실 증명을 합니다. 

 

*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에로' : 유다인들의 법칙에 따라 증명 

 

예수님이 이 유다인들의 법칙을 그대로 사용하셨다라는 거예요.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에로' 그러니까 큰 거를 하나 예로 들면 나머지는 다  따라온다는 거죠. 만일 예수님께서 인간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실 때 더 큰 것 즉 관찰할 수 있다고 확인할 수 있는 육체적인 치유를 이뤄낸다면 이보다 작은 거, 사제 선언 그러니까 말로 "너 용서받았어!"라고 하는 것이 당연스럽게 헛말이 아니라는 게 확증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에게 치유의 말을 하셨고 그 사람은 병이 나았던 겁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이 휘두르던 무기로 율법 학자들을 친 셈이죠. 

 

그러니까 처음에 예수님이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니 사람들이 의심을 가질 거 아니에요. 그 권한이 저 사람에게 있는 거야?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이 생각하는 원칙대로 "그래, 그러면 병이 낫는 거를 보여 주면, 기적을 보여 주면 내 말이 헛된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겠지." 하고 이 방법을 쓰셨다는 겁니다. 그래요. 중풍 병자는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바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율법 학자들에게 반문하셨고 또 그들의 비난이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가를 이렇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하신 것 

⇒ 예수님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이 증명된 것  

 

다음은 제 나름대로 이해한 부분입니다

 

 

저도 어떤 때는 이해가 되는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때는 어려운 말씀이 '어느 것이 더 쉬우냐?'
이 부분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는 게 더 쉽다는 거죠. 
직접적으로 병의 치유, 
기적을 일으키는 게 더 큰 것이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 같습니다. 

저 나름대로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죄가 용서되었기에 치유(기적)가 일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믿으니까 기적(치유)이 일어나듯이
이미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미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기적(치유)이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웃으니 복이 오는 것이지
복이 오니 웃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와
비슷한 거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먼저 용서하셨고 
그렇게 네 죄가 용서되었다고 하자 
율법 학자들이 
어, 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해?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래, 그럼 내가 저 사람의 중풍 병을 치유하지
그럼 너희가 그 사람의 죄가 용서되었음을 
믿게 될 거니까. 

그러니까 당시 유다 사회에서 중풍과 나병은 
천형, 곧 천벌(죄의 결과)로 이해했기 때문에
중풍 병이 치유되었다는 것은 곧 그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죄의 용서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이 아니라 죽었을 때에만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고 믿었기에 
예수님의 사죄 선언은 당시 율법 학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율법 학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에서 특히나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그랬어요. 

너 아들 낳을꺼야라고 소식을 전했으나
표징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렇듯이 예수님께서 너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사죄선언을 하셔도 표징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지 싶습니다. 

우리들이 고해성사를 보고도 이와 비슷한 마음이
들 때가 있지 않은지요. ^^
'내 죄가 용서된 걸까?'


토마스에게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크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 부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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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용서, 중풍 병자,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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